수업거부 의대생 '출구전략' 마련하나
교육부 ‘집단유급·동맹휴학 불가’ 고수 … 총장들 ‘교육환경 지원’ 집단 요구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한 가운데 2월부터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휴학 승인 등 출구전략도 마련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런 가운데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대학 총장들이 ‘의과대학 정상화를 위한 총장협의회(협의회)’를 꾸리고 수업 거부를 하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과 휴학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구체적인 교육환경 개선 지원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4일 33개 대학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첫 화상회의를 열었다.
협의회는 이날 “현실적으로 의대생 유급과 휴학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향후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해 인원 시설 장비 등 교육환경 개선 지원 방안을 정부에 집중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집단 유급 불가, 동맹 휴학 승인 불가’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총장들은 수업 거부 사태가 이어질 경우 유급 또는 휴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회장을 맡은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2025학년도의 경우 학칙이 개정되고 사실상 정원 문제는 끝났는데, 2026·2027학년도에도 계속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상황”이라며 “의대 운영대학 학장이나 교수 협의체는 있지만 총장 협의체는 없기 때문에 의대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급 또는 휴학 불가피 = 각 대학에 따르면 유급이나 휴학이 현실화될 경우 예과 1학년은 내년부터 증원된 신입생 4500명에 유급·휴학 처리된 학생 3000명을 합쳐 7500여명이 6년간 수업을 듣게 된다.
협의회는 또 오는 7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면담을 추진하고,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성명도 발표할 계획이다.
이날 총장들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의 민사소송에 협의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심포지엄에서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내년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고등법원은 (의대 증원으로) 학생들이 피해본다는 것을 일단 인정했다"면서 "실제 학생들이 유급되고 내년 3월부터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들의 수업권과 학습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송 당사자 원고는 학생이 되고, 피고는 대학교 총장”이라며 “총장에게 책임을 묻고 구상권을 청구하겠다. 3년간 끝까지 (투쟁)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휴학승인 여부에 의견 갈려 = 또한 이날 회의에서는 학생들의 동맹휴학 승인 여부와 관련해서 총장들의 의견이 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일부 대학은 의대생들이 제출한 동맹휴학계를 모두 승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규모로 휴학을 승인할 경우 2025학년도에는 기존보다 1.5배 늘어난 신입생에 더해 복학생들까지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고, 이들이 10년 가까이 함께 교육과 수련을 받아야 하므로 ‘교육 파행’을 넘어 ‘교육 불가’ 상황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일부 대학은 휴학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유급 등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최대한 휴학을 승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급될 경우 휴학과 달리 등록금을 환불받을 수 없고, 기존에 유급한 이력이 있는 학생은 학칙에 따라 퇴교 등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법정 다툼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의대생들은 지난 2월 20일부터 집단 휴학계 제출 및 수업거부에 돌입해 이날 현재 100일을 넘긴 상황이다. 통상 대학은 학칙에서 수업일수의 1/3 내지는 1/4을 빠질 경우 낙제(F) 처리한다. 특히 의대의 경우 F가 한 개만 나와도 유급 처리돼 진급하지 못한다.
이에 대학들은 의대생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간 후로 학사 일정을 연기해 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온라인 수업 운영 및 ‘학기제’의 ‘학년제’ 전환 등 유급 방지 대책을 담은 ‘탄력적 학사운영 방안’을 각자 마련한 상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학의 수업일수를 매 학년도 30주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역산하면 대학들은 늦어도 7월 말~8월 초 사이엔 의대 수업을 정상화해야 하지만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설령 8월 초에 의대생들이 돌아오더라도 이미 늦어버린 수업을 다 마치려면 주말이나 야간 수업을 강행해야 해 현실적으로 감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정부차원 논의 시작하나 = 앞서 보건복지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안 브리핑을 열어 전공의와 소속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등 각종 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초반부터 유지했던 사직서 수리 불가, 이탈 전공의 면허정지 등에 대한 입장을 바꿔 진료공백 축소에 나선 것이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전공의 사직 사태를 일단락시키기 위해 ‘출구전략’을 마련한 만큼 의대생 대상으로도 휴학 승인 시나리오를 재검토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충북대 ‘제적 가능성’ 경고 = 한편 충북대는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에게 학사 안내문을 통해 제적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충북대는 유급 기준과 방지 방법, 당부사항들이 담긴 학사 안내문을 의대생들에게 발송했다.
안내문에서 학교는 ‘2학기 등록을 하지 않으면 제적돼 재입학도 어렵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등록금을 기간 내에 납부하지 않거나, 유급이 특정 횟수 이상이면 제적된다.
고창섭 총장도 안내문을 통해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만 한다면 문제없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유연 학기제 운용, 계절제 수업, 영상 수업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수업 복귀를 촉구했다.
이에 최중국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대학측이 복귀할 생각이 없는 학생들을 압박하기 위해 ‘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총장과 면담해 휴학계 수리를 촉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