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대 가구 담합 8개사 11명 유죄
법원 “공정성 침해” … 징역형 집유 선고
아파트 웃돈분양, 소비자 소송 이어질 듯
아파트 가구 입찰에서 2조3000억원대 담합을 벌인 8개 가구업체와 전·현직 임직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가구업계의 담합행위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상당의 내지 않아도 될 웃돈을 주고 아파트분양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앙법원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4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샘·한샘넥서스·넵스·에넥스·넥시스·우아미·선앤엘인테리어·리버스 등 8개 가구업체 임직원 중 최양하 전 한샘 회장을 제외한 11명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각 법인에는 1억~2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들 가구업체는 2014년 1월~2022년 12월 24개 건설업체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 현장 783건의 주방·일반 가구공사 입찰에 참여해 낙찰예정자와 입찰 가격 등을 합의해 써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담합한 입찰 규모는 2조326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기업의 담합 때문에 가구 값이 부풀려졌고, 그로 인해 분양가가 오르며 아파트를 분양 받은 입주자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아파트 분양가는 땅값과 건축비를 기반으로 책정되는데, 주방·일반 가구 가격은 건축비에 포함돼 분양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구 업체들은 재판에서 대부분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최 전 회장측은 “퇴사(2019년) 후 담합 사실을 알게 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이날 재판부는 이들 가구업체 임직원들의 담합을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담합은 입찰 공정성을 침해하고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해 국민 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중대 범죄”라며 “이 사건처럼 담합이 장기간 진행돼도 당국이나 수사기관이 발견조차 하기 어렵고 얼핏 봐서는 건설자 외에는 피해자가 없는 것처럼 보여 그 위험성도 간과하기 쉽다”고 지적 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들, 또 피고 가구 업체들은 건설사에 비해 열위한 지위에서도 생존을 위해 담합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입찰을 실시한 건설사들이 입은 피해가 그다지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담합에 참여한 기간, 횟수, 주도 여부, 담합으로 인해 낙찰을 몇 번이나 받았는지, 낙찰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최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결재한 문서에 담합을 암시하는 문구가 있는 등 담합 사실을 묵인했다고 의심되는 다수 정황이 있다”면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부하 직원들이 전부 일치해 최 전 회장이 사건 입찰 담합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일부 현재 한샘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어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시행한 ‘카르텔 형벌감면 지침(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한 업체의 자진신고를 받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 직접 수사에 착수한 첫 사례다. 카르텔 형벌감면 지침은 수사 착수 전후 가장 먼저 필요한 증거를 단독으로 제공하고, 관련 사실을 모두 진술하면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협조한 1순위 신고자에 기소를 면제해 주는 제도다. 최초로 담합을 자진 신고한 현대리바트는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기소 면제 처분을 받았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