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진·총파업’ 의정갈등 2차전 가나
의협 찬반투표 결과가 분수령 … 의료계, 정부·총장 상대 민사소송 준비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17일부터 전체 휴진에 나서기로 했다. 여기에 교수단체들도 이와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어서 전공의 사직서 허용 등으로 ‘출구전략’ 마련에 나섰던 정부 계획이 난관에 봉착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까지 총파업을 결의하고 나서면 의정갈등이 사실상 2차전에 돌입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의료계는 정부와 대통령은 물론 총장들에 대해서도 동시다발 대규모 소송전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 유화책 ‘꼼수’로 판단 = 6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전공의에게 내린 행정처분 절차를 완전히 취소하지 않으면 오는 17일 전체휴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자칫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모든 교수가 일시에 병원을 떠나는 상황이 우려된다.
이번 집단휴진 예고로 전공의 사직서 수리 허용 등으로 의정 갈등의 해결을 모색하려던 정부의 ‘출구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지난 4일 전공의와 소속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 각종 명령을 철회하고,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전공의들이 다시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중단했던 행정처분을 ‘재개’할 수 있다는 꼼수라고 판단하고 있다. 행정처분 취소가 아닌 ‘중단’을 통해 전공의를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들에게 내려진 행정처분 절차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전략이 난관에 부닥쳤다.
비대위는 “정부는 (전공의가) 복귀하는 경우 면허정지 처분을 수련이 완료될 때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며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인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이 여전히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 ‘파업’ 결의 확산 가능성 =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집단휴진을 결의하면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나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다른 의과대학 교수 단체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앞서 전의교협과 전의비는 집단휴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면서도,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집단휴진을 결의할 경우 휴진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협도 7일까지 투표를 진행한 뒤 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교수,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과 함께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회원 대다수가 찬성하는 분위기인데다 강경파인 임현택 의협 회장이 논의를 이끌고 있어 총파업 선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총파업 ‘선언’이 ‘동참’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의협 회원의 대다수인 개원의는 2020년 집단 휴진 당시 수익 감소를 우려해 10% 미만만 참여했다. 의대 교수들도 최근 이어진 하루 휴진 참여율이 저조했던 만큼 실제 총파업 수준의 휴진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장기 법정 다툼 예고 = 이런 가운데 의정갈등이 장기간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일 의대생과 전공의, 의대 교수단체는 “정부의 의료 농단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10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등에서 의료계를 대리해온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행정 처분이나 형사 처벌 등 법적 위험 부담이 제거되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전공의 1만명과 의대생 1만8000명, 의대 교수 1만2000명,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 14만명 등이 대한민국과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대학 총장 등을 대상으로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송금액에 대해서는 “전공의 1인의 3~4개월치 급여가 1000만원으로 추산되므로 1만명분인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들에 구상권 청구 추진 = 앞서 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이 늘어난 대학의 총장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국 40개 의대교수 단체인 전의교협을 이끄는 김창수 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심포지엄에서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내년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서울고법은 (증원으로) 의대생들이 피해 본다는 것을 일단 인정했다”면서 “학생들이 유급되고 내년 3월부터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들의 수업권·학습권이 침해될 것이라 2차전으로 총장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고는 학생이 되고 피고는 대학교 총장”이라며 “총장에게 책임을 묻고 구상권을 청구해 쪽박을 차게 하겠다. 3년간 끝까지 (투쟁)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단체의 이런 움직임에 총장들도 우려하고 있다.
내년도 의대 선발인원이 늘어나는 대학의 총장들은 ‘의과대학 정상화를 위한 총장협의회’를 구성하고 지난 4일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협의회는 의대생·학부모, 전의교협 등 의료계 차원의 총장 상대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