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대입 앞장서는 정부
당장 바꾸라는 정부, 흔들리는 대입 정책
4년 예고제 유명무실 … 무전공 확대·의대 증원, 커지는 불안감에 공교육도 흔들
지난해 첨단학과 증원, 수능 초고난도(킬러) 문항 배제, 올해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확대 및 의대 증원 등 대입 판도를 크게 바꿀 정책이 당해 고지·진행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대입은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측이 어려워지면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커지고 이는 결국 사교육 의존도를 높여 대입 전반을 흔들기 때문이다. 대입 3년 예고제가 4년 예고제로 바뀐 이유이다. 하지만 최근 이를 정부가 앞장서 깨고 있어 현장의 혼란이 크다. 정부는 왜 대입·교육 정책을 갑작스럽게 바꾸려 하는 것일까? 4년 예고제는 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까? ‘깜깜이’ 대입이 또다시 반복되는 이유를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봤다.
올해 대입을 두고 ‘예측 불허’란 지적이 이어진다. 대입 전반에 영향을 줄 만큼 파급력 큰 변화가 갑자기 결정·적용됐기 때문이다. 포문은 무전공(자율전공)이 열었다. 교육부는 1월 2일 공개한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 시안(사립대)’과 ‘국립대육성사업 개편안 시안’에서 수도권 사립대와 국립대(거점대·국가중심대)의 경우 2025학년에 각각 20%·25% 이상, 2026학년에 25%·30% 이상 무전공 입학생을 모집해야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대 증원은 지난해 논의가 시작됐지만 대학별 선발 인원은 수시 모집 요강 발표 하루 전에야 공개됐다. 5월 30일 전년 대비 1497명 많은 4610명을 모집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증원은 일단락됐지만 대학의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의 행태는 비단 올해뿐만이 아니다. 2024학년 첨단학과 증원, 수능 초고난도 문항 배제 방침도 급작스럽게 반영됐다.
이 같은 정부의 교육 정책은 모두 이유가 있다. 부족한 첨단 분야 및 의료·보건 인력 양성,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촉발된 초연결 초지능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혁신, 출생률 감소에 따른 교육 현안 대처 등 관계자 내에서 일부 논쟁도 있지만 큰 틀에서 필요한 논의·정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육계의 의견도 비슷하다.
문제는 시기와 방식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특성상 대입은 고교교육 현장, 사교육 시장과 직결된다. 특히 입시는 예측 가능성이 강조된다.
◆대입 전체 판 흔드는 무전공·의대 = 올해 무전공 확대와 의대 증원은 입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의대는 비수도권 대학 지역인재전형 중심으로 증원됐다. 전체 증원 인원 1497명 중 888명이 지역인재전형에 배분됐다. 대학이 있는 권역 내 학생을 선발하며 수시 교과전형 비중이 높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교과 등급이 1등급대인 학생 중 상당수가 의학계열로 지원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 인한 증원에 따른 합격선 하락은 증원 대상인 의대를 넘어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등 의약학계열과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자연 계열 전공에서까지 연쇄적으로 발생할 전망이다.
여기에 간호대 역시 의대처럼 모집 인원이 순증했고 비수도권 대학 비율이 높은 데다 지역인재전형 의무 선발이 적용된다. 실제 2025학년 전국 113개 4년제 대학 간호학과 선발 인원 1만806명 중 비수도권 대학이 8882명(82.2%)을 차지한다. 전공 선택 시 ‘직업 안정성’을 더 고려하는 비수도권 지역의 특성, 4년제 간호대학의 높은 합격선을 고려하면 지역 대학은 물론 서울·경인권 대학 자연계열 지원·합격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대에 묻혀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심이 덜한 무전공은 사실 수험생 입장에선 더 큰 변화다. 의대 증원이 일부 최상위권 학생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무전공 선발은 대학 내 거의 모든 모집 단위 정원 조정과 맞물려 30만명이 넘는 고3 학생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전공 선발 인원이 늘면 그만큼 기존 학과 정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특정 학과를 희망해온 학생에게 타격이 된다. 또 인원 변동에 따라 기존 학과의 합격선도 달라질 수 있어 지난 입시 결과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렵다.
A고교 교사는 “지난해 첨단학과 증원으로 취업 전망이 우수한 데다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지역 거점국립대 인기 전공 위주로 선발 인원이 늘어나 자연계열 상위권의 대입 선택지에도 변화가 컸기 때문에 이전 입시 결과로 누적해온 지원층의 성향, 지원선, 합격선 등의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려웠다”며 “올해는 최상위권 리그인 의대부터 모든 계열이 영향권 안에 드는 무전공까지 들어와 진학 지도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또한 “수험생도 불안이 크고,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사교육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해져 결국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도 훼손된다”고 토로했다.
◆뒤집힌 2025 시행계획, 고무줄 될 2026 시행계획 = 고교 현장은 올해 혼란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지난 4월 각 대학이 발표한 ‘2026학년 대입시행계획’에 벌써 변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의 변화가 뒤늦게 발표된 탓이다.
무전공을 예로 들면 대학은 무전공 확대 시행 여부부터 정원 배치 및 선발 방법에 대한 정보를 5월 31일에야 대학별 모집 요강을 통해서 공개했다. 교육부는 하루 앞서 전체 모집 인원을 공개했다. 2025학년 전공자율 선택제 중점 추진 대학인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교대·특수목적대 제외) 총 73개교가 3만7935명을 자율전공으로 모집한다고 알렸다. 학교별로는 한국외대는 자율전공 모집 인원(유형1+유형2)이 116명에서 835명으로 700명 이상 대폭 늘어난다.
그런데 지난 4월 말 현 고2가 치를 ‘2026학년 대입전형시행계획’에서 연세대 무전공 선발 인원은 387명이었다. 올해보다 모집 정원이 100명 가까이 적어진 셈이다. 경희대(183명) 서울대(520명) 중앙대(295명)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권고했던 무전공 확대안은 내년 의무 적용된다. 내년 선발인원이 더 많은데 고2 대상 대입 계획에는 이것이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발표된 ‘2025학년 대입전형시행계획’과 실제 대입의 차이는 더 크다.
B대학 관계자는 “무전공 정원 확보 과정에서 학내 반발이 상당했다”며 “올해 입시에도 겨우 반영했는데 2026학년 계획에까지 반영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 상황으로는 올해와 비슷하게 내년 5월이 되어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교육부는 결정과 공개를 당겨달라고 하는데 당장 이번 입시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 쉽지 않다”고 밝혔다.
A고교 교사는 “대입을 지도할 때 대학의 시행계획은 중요한 지표”라며 “수시·정시 모집 요강은 고3 수험생이 그때까지 누적해온 학업·활동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면 고2때 발표되는 시행계획은 입시의 큰 틀을 확인해 고 2·3 학습·진로 활동을 설계하는 데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에는 당해 수시 모집 요강을 코앞에 두고도 주요 모집 단위 선발 규모나 전형별 비중을 특정할 수 없었고 2026학년 시행계획도 이미 변경이 예고됐다”며 “가능한 이른 시기에 2026학년 무전공 및 의대 선발 인원을 알리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바꿀 시행계획을 왜 발표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대입은 ‘4년 예고제’가 이미 시행 중이다. 대입 제도에 관한 학생과 학부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부가 대입 정책을 변경하려는 경우 수년 전에 대입 정책을 공표하는 것을 말한다. 현 중3이 치를 2028 대입 전형안이 지난해 12월 발표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규정이 있는데 정부는 어떻게 계속 대입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걸까? 세부 규정 때문이다. 4년예고제에 따라 시행계획에 예고한 지원 자격, 전형별 전형 요소 및 반영 비율, 수능 필수 응시 영역, 학생부 반영 교과 및 반영 방법, 수능 최저 학력 기준 등 대부분은 변경 없이 유지해야 한다. 단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거나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개편 등이 있는 경우 변경이 가능하다. 무전공, 의대, 간호대, 교대, 첨단학과 모두 이에 해당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학이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이다 보니 산업·국가 정책과 맞물려 최근 입시에 변화가 커진 것 같다”며 “정부도 이를 인지해 수험생의 피해를 줄이도록 노력할 방침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국가 경쟁력을 유지·발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고 전했다.
◆예측 가능한 대입 해법은 = 하지만 정부는 2028 대입 개편에서 수시·정시 비중 등에 대한 논의는 입시 안정성을 이유로 현행 유지를 택했다. 이 때문에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제도를 휘두른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교육 전문가들은 4년 예고제의 도입 취지를 살리고 최소한의 입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항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교육 관계자는 “올해처럼 전체 모집 단위를 흔드는 변화가 당해 반영되면 대학도, 고교도 혼란에 휩싸인다”며 “사회 변화를 고려한 정책이라고 해도 반드시 해당 연도부터 도입할 필요는 없다. 대학 정원 조정 역시 ‘시행계획’에서 반영되도록 하거나 2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시행하도록 규정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때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다수의 대학·고교 관계자는 “정부의 교육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를 제외한다는 데 있다”며 “고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대입 지도, 대학에서 입학 전형을 설계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정부의 필요만 정책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뒷수습이나 혼란은 대학과 고교, 수험생과 학부모가 떠안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정책 결정권자가 현재 고교·대학 상황에 무지하고 산업계나 정치적 현안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더 큰 엇박자를 내고 있다. 교육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세우기 어렵다면 교육을 잘 아는 사람과의 소통이 답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교육 및 입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김기수 기자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