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그럼에도 학교

왜 자꾸 스승처럼 평가하려고 하지?

2024-06-12 13:00:02 게재

왜 자꾸 스승처럼 평가하려고 하지?

tvN 드라마 ‘졸업’ 1회에서는 고등학교 재시험 요구를 주요 사건으로 다룬다. 공교육 교사는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며 극보수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학부모를 사칭해 시험 문항에 대해 비판하던 사교육 강사가 영웅처럼 그려지는 서사에 교육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다른 장면으로 시선을 넘겨보려 한다.

재시험 요구를 받은 교사는 학생들과 학기 첫 수업장면에서 ‘교과서 외에 어떤 곳에서도 시험을 출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수업 장면과 같이 수업과 시험 문제에 대해 보수적으로 아이들에게 안내하는 장면은 교육 현장에서 꽤나 흔한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왜 현장에서 교사는 수업과 출제, 평가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가.

정시 확대를 기조로 하던 2019 대입 제도 공정성 방안, 그 이전의 학교를 그리워한다. 당시 학교의 분위기는 자발적 수업 변화를 실천하는 활력이 있었다.

2019 대입 제도 공정성 방안이 이러한 분위기를 모두 망쳤다고 표현하면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하나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당시 고교 현장에서 이어지던 수업의 변화가 지속되었더라면 ‘평가의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대입 제도 공정성 방안이 평가의 변화를 저해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있다. 그 근거는 ‘공정서사의 승리’에 있다. 그 당시 학생부종합전형에 관한 모든 기사의 댓글에는 정시 100%만이 가장 공정하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주장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처럼 정성평가의 공정성 여부는 ‘전국민적’으로 부정된 것이다. 현장 교사에게 수업 이후 학생들의 역량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성평가 역량이 필요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수업 변화에 이어 평가 변화를 꾀하던 많은 교사들이 수업 변화조차 포기하거나 평가 변화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혁신적 평가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유는? 2023년 교육부는 2028 대입 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면서 ‘교사의 평가 역량 강화’를 내세운다. ‘모든 고교 교사의 혁신적 평가 역량을 확보(2024~2025년)’하겠다는 정책은 현재의 고교 교사들이 혁신적 평가 역량을 갖추지 못했음을 전제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모든 고교 교사들이 혁신적 평가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을 보다 명확히 찾기 위함이다. 그 원인은 교사들의 역량 부족이 아니다.

‘공정서사의 승리’ 와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평가 패러다임’에 있다. 이 패러다임은 고교 내신의 지필평가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성장을 위한 수행평가는 형식적으로만, 기록되기 좋은 정도로만 평가하게 만들었다. 앞서 드라마에 등장한 교사의 보수적인 수업과 평가 안내가 현실과 유사하다고 인정한 이유이다.

2019년 이후 평가 역량을 기를 수 있었던 이 잃어버린 5년을 지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교육부에서 평가역량을 전면에 내세워 많은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공정서사에 따른 평가 패러다임이 공고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가 혁신적 평가 역량을 확보했다고 해도 이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다시 드라마 ‘졸업’으로 돌아온다. 드라마에서 학원 원장은 앞서 등장했던 학원 강사에게 ‘왜 자꾸 스승처럼 굴려고 하지?’라는 대사를 한다. 앞서 학원 강사는 학생에게 독서를 권하는 신입 강사에게 ‘스승이라도 될 생각은 아니죠?’라고 묻는다. 비효율적인 선택, 돈이 되지 않을 선택, 독서처럼 학생에게 장기적인 도움이 될 만한 선택을 권했을 때 이를 냉소하는 대사이다. 이 대사를 고치고 싶다. ‘왜 자꾸 스승처럼 평가하려고 하지?’라며 누군가 묻는다면 ‘교사로서 저마다의 놀라움을 가진 아이들 성장을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겠다.

평가를 공부하며 사과할 용기가 생겼다. 지난해 ‘독서’ 과목에서 추론적 읽기와 비판적 읽기를 정성스레 가르쳤다. 진짜로 비판할 줄 아는지, 추론할 줄 아는지를 평가하고 싶어서 아이들이 읽어본 적 없는 지문과 함께 서술형 평가 문항을 출제했다.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 평가 포기 않겠다

이번학기 ‘독서’ 수업에 꽤 만족하고 있던 터라 아이들이 잘 적어내리라 믿었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미 예견된 문제가 있었다. 50분 시험 시간 동안 아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는 무려 30문항이었다. 아이들에게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내용을 추론하고 타당성과 공정성, 적절성을 비판할 줄 알았을 것이다. 배운 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변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아이들을 만나면 사과하고 싶다. 스승처럼 평가하겠다고,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 평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이재호

강원 양양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