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 면죄부’에 의대생은 ‘시큰둥’
교육부 ‘비상 학사 운영 가이드라인’ 마련 … “의대 교육 부실 불가피” 우려도
정부가 F학점을 받은 의과대학생도 유급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구제책을 내놨으나 의대생들의 복귀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의대생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지난 2월 중순부터 집단으로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해왔다.
17일 대학가에 따르면 교육부는 최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의대 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의대생들이 원활하게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대학과 협의해 ‘비상 학사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가이드라인의 예시로 1학기 이수 과목을 2학기로 추가개설을 허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의대생들의 유급을 방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학기 말에 유급 여부를 정하지 않고 학년도 말까지 수업 결손을 보충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또 기존 학사운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의대가 건의한 대로 3학기제 등 탄력적인 수업 운영을 위한 ‘비상 학사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학에 안내할 계획이다.
즉, 의대는 대부분 학칙상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되는데 기준을 대폭 완화해 의대생들이 복귀하기만 한다면 원래대로 진급을 시키겠다는 의미다.
이 부총리는 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대책으로 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학별로 (의대생 복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교육부도 최대한 힘을 보태겠다”며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만들어 의대생들이 빨리 복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수업 못따라가는 학생’ 우려 = 하지만 교육부의 바람과 달리 의대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의대는 한 번 입학하면 예과 1학년부터 본과 4학년까지 6년 동안 같은 동기들과 수업을 듣고, 선후배 문화도 다소 폐쇄적이라는 특성상 돌아가고 싶은 의사가 있는 일부 학생들도 선뜻 복귀를 결심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의대를 운영하는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대학에서 어떻게 조치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고, 전공의들이 의대생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공의부터 돌아와야 학생들도 돌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의대 교육 부실화 우려가 나온다.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로 교육 부실 우려를 꼽았는데, 정원을 본격적으로 늘리기도 전에 이 같은 걱정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의대에 다른 학과에 없는 유급 제도를 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취득한 학생만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도록 해 의대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학년별로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전 학년의 수업 내용을 충분히 배우지 않으면 다음 학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실상 유급제도가 사라지면 올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의대생들이 진급하게 되고, 재학 기간 내내 교육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들은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으로부터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에 대한 평가 인증을 2년이나 4년, 6년 주기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진급이 부실하게 이뤄지면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복귀 유인책 사라져 = 교육계 일부에서는 교육부가 의대생들을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강의실로 돌아올 유인이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교육부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에 두 차례 공식적으로 대화를 요청했으나 불응했고, 개별 대학교 학생회를 통한 만남 요청에도 답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등 소통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런 비판에 대해 “인증평가 주관기관인 의평원과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인증받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논의해볼 것”이라며 “타과생들의 형평성 제기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의대생 수업과 관련해 비상한 상황은 비상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한편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인원을 약 1500명 늘리는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수정과 수시 모집요강 발표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이 수업 거부 강요 등으로 복귀가 어려울 수 있을 경우를 대비해 대학 내 ‘의대생 복귀상담센터’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