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행동진화, 유전자 발현 조절로 가능
이준호 서울대 교수팀
예쁜꼬마선충 분석
국내 연구진이 생물의 행동 진화가 유전자의 아미노산 서열 변화가 아닌 유전자 발현 조절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 생물인 예쁜꼬마선충 유전자와 행동 분석을 통해 특정 세포의 유전자 발현 조절만으로 새로운 형질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일 밝혔다.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형질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양한 기전이 제안돼 있으나 실험적으로 실증해 보인 예는 많지 않다.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이 새로운 서식지로 찾아가기 위해 다른 종에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선충은 다우어(dauer)라는 휴면 상태 유충이 되는데 다우어 유충은 ‘닉테이션’(nictation)이라는 몸을 세우고 흔드는 행동을 보인다. 닉테이션을 잘하는 다우어가 초파리나 쥐며느리처럼 더 큰 동물의 등에 올라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도 확인됐다.
지구 곳곳에서 널리 발견되는 동물인 예쁜꼬마선충들의 히치하이킹 행동은 품종에 따라 서로 다른 빈도로 일어난다. 연구팀은 전체 유전체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전장유전체 연관분석(GWAS) 등 다양한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예쁜꼬마선충의 차이를 만드는 염기서열 변이를 단일 유전자 수준에서 파악했다. 분석 결과 ‘스테로이드 생합성효소’ 유전자가 예쁜꼬마선충의 행동 차이를 조절한다는 것이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 (또는 없어지는) 분자적 기전은 기존 단백질의 새로운 변형, 즉 새로운 아미노산 서열의 출현으로 설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단백질 자체의 구조의 변화가 그 분자적 기전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히치하이킹 행동의 새로운 조절 기전을 확인한 점과 진화적 신규성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발현 조절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자연변이의 존재로부터 확인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