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두뇌’ 라이트하이저를 주목한다

2024-07-04 13:00:01 게재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초접전 양상에서 트럼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주 실시된 첫 TV토론에서 바이든이 ‘참패’하면서다. 민주당 안팎에서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진보 매체이며 최대 일간부수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조차도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경선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제하의 사설을 실었다. 세계 각국은 트럼프가 재집권할 때 누가 경제수장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민주·공화 막론하고 ‘미국우선주의’ 수용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재무장관 1순위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가 부상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정부 당시 2017년부터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지난 8년간 미국 무역정책은 ‘트럼프의 두뇌’ 역할을 했던 라이트하이저의 주장에 따라 재구성됐다. 미국은 트럼프정부를 거치며 70년간 지속해 온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부정하고 강력한 국수주의적 접근방식으로 선회했다.

라이트하이저의 영향력은 공화당에 그치지 않았다. 바이든정부는 최근 중국산 수입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반도체, 리튬이온배터리, 태양전지,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다.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국제경제 정책에서 ‘미국우선주의’를 수용했다. 이런 선택은 앞으로 수년, 어쩌면 수십년 지속될 수 있다.

지난날 미국 대통령들은 글로벌 무역장벽을 낮추면 미국과 세계를 더 부유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최대 25%의 관세를, 중국의 대미 수출상품 75%에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다. 바이든정부는 초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대미 우회 수출까지 차단할 계획 중이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4개국과 멕시코가 대상국가다.

미국의 이런 조치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라이트하이저가 겨냥하는 다음 대상은 ‘무역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1975년 이후 미국은 무역에서 많은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높은 소비와 낮은 민간·공공 저축률의 결과다. 따라서 무역에 대한 정부개입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그러나 라이트하이저의 생각은 다르다. 무역적자는 미국의 부를 경쟁국, 특히 중국이 직접 챙겨간 것에서 비롯됐고 미국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면 이를 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가 좋아하는 수단은 ‘관세’다. 관세는 백악관에서 가장 명확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고 재산업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더 높은 관세가 필요하며, 이 정책이 성공하면 고임금의 산업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중국뿐 아니라 모든 무역파트너와 무역균형을 맞추려 한다. 1985년 미국이 주도했던 G5(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간 ‘플라자합의’가 재추진될 수 있다. ‘달러약세를 향한 공동노력’과 ‘통상법 301조에 따른 100% 보복관세’가 핵심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에 빠지게 했던 이 조치가 다시 실행되면 그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만약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일대일 맞대응한다면 1930년대 무역·환율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수입업체의 고통 등 미국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플라자합의’ 재추진될 수도, 한국 정부·재계 긴장해야

혼란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관세를 부과했을 때 글로벌 무역시스템이 빠른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2018~2023년까지 5년간 중국의 제조품 수출은 2조5000억달러에서 3조5000억달러로 40% 늘었는데, 이는 2013~2018년까지 증가율 15%보다 2배 이상 높은 규모다. 반대로 미국은 2022년 사상 최대 규모인 9510억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 지표들은 ‘위대한 미국 재건’을 위해 중국에 고율관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근거가 박약한 ‘정치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불안정성과 취약한 외교력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환율전쟁에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일본이 당했던 치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과거 트럼프정부는 삼성·LG전자를 ‘약탈자(predator)’라고 낙인찍으며 “삼성과 LG가 미국 대표 가전업체 월풀을 밀어내려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라이트하이저의 재부상에 한국정부와 재계가 긴장해야 할 이유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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