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해킹> 펴낸 문호진 작가 | 공정의 탈을 쓴 수능을 고발한다

2024-07-10 11:11:12 게재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개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신분’으로 통한다. 다수의 수험생이 재수, 삼수를 넘어 ‘무한 N수’를 감내하며 수능에 도전하는 이유다. 문호진은 현직 의사이자 교육 평론가다. 의대 입시가 계급 재생산 통로로 굳어져가고 이 땅의 교육이 일그러져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두 일을 병행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껏 나온 어떤 주장보다 센 ‘수능 고발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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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지은

문호진 작가는 인하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의사로 일한다. 2020년부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에서 공공 의료 확충, 의과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교육계에서 문제집의 대표 형식으로 자리 잡은 실전 모의고사의 ‘시조’ <포카칩 모의평가 수리 가·나형>을 공저했으며,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시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불평등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미치는 악영향을 눈여겨보게 됐다.

Q. ‘의사 쌤’이 교육 평론가로도 맹활약 중이다. ‘낯선 조합’을 병행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2020년 당시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막아선 전공의의 맹목적 반대는 의사인 내가 봐도 가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문제의 근원에 대해 내가 내린 진단은 ‘교육’이었다.

자연 계열 수험생 중 상위권 대다수는 의대를 지망한다. 정시 합격자의 80%가 ‘N수생’이다. 의대 입학에 사교육의 도움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수록 의사를 늘려 의료 취약지와 기피 과목 인력 부족 문제를 풀겠다는 정책을 비합리적으로 여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데 대한 금전적 보상을 위협하는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의학 공부의 과정이 교육 현실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면 완치 가능성을 높이지만 잘못 치료하면 도리어 회복을 방해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내가 킬러 문항의 제작자였던 만큼 누구보다 현 교육의 폐단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두 일을 병행하게 됐다. 이 정도면 답이 됐을까? (웃음)

Q. 정부가 ‘킬러 문항 배제’ 및 일타 강사 동영상 무료 배포 등을 통해 사교육을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방편’일 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방향은 유효했다. 다만 킬러 문항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됐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킬러 문항은 단순한 고난도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만으로는 풀기 어렵지만 출제 역량을 갖춘 일부 사교육 업체는 대비할 수 있는 문항’을 말한다. 이런 ‘패턴화된 고난도 문제’를 제거해야 사교육의 힘을 뺄 수 있다.

대치동 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 시장은 매해 수능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모의고사, 시중 문제집을 분석해 수능을 거의 재현하다시피 한다. 이를 방증하듯 대치동 ㅅ학원은 최상위권 의대 정시 합격률이 50%에 달하지 않나.

인강이 학생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도 커다란 착각이다. 소위 ‘일타 강사’의 강의를 보라. 기초 개념부터 짚어주지 않는다. 해당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학생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강해주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일방적 주입식 수업’일 뿐이다.

사교육의 혜택을 받기 힘든 지방 혹은 저소득층 학생은 기초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인데 영상을 무료로 배포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런 상황에 ‘인강도 제공했으니 결과는 네 몫’이라는 건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제도권의 핑계이자 폭력에 다름 아니다.

Q. 그럼에도 수능을 공정한 시험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잖다. 또한 ‘사교육은 수능 성적 향상에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입시는 숫자다. 사교육이 수능 성적과 관계없다면 앞서 말한 대치동 ㅅ학원의 입시 실적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수능이 ‘50만 명을 차례대로 줄 세우는 시험’이라는 것도 허상이다. 성적표를 봐도 전국 몇 등인지 알 수 없다.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가 찍혀 나오지만 대학마다 과목별 반영 비율이 달라 합격 유불리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대학이 실질 반영 비율을 불과 3주 전에 ‘기습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인강이 보편화되더라도 부모의 경제력이나 주거 지역에 따라 실전 모의고사 등을 비롯한 자료 접근성은 천차만별이다. 서울대 입학생 3명 중 2명이 수도권 출신이며 전국 1, 2등급 이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강남 및 사교육 특구 4곳이다.

이에 반해 지역 일반고에 재학 중인 다수 수험생은 몸에 맞지 않는 일타 강사의 강의를 보며 공허한 노력을 기울이고, 저조한 성적을 받은 자신을 탓하다가 정시를 포기하기까지 한다. 사교육비 격차가 학력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강조하자면 ‘인강은 지역을 죽이는 독’이며 수능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Q.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책 <수능해킹>을 펴냈다. 핵심 내용이 뭔가?

수능의 출제 원리를 추론한 후 문제 풀이 방식을 일반화된 공식으로 단순화해 수험생에게 숙달시키는 작업, 사교육 업계가 지난 10년간 해온 방식이 바로 ‘수능 해킹’이다.

고백건대 내심 책 제목에 ‘수능’이란 단어를 넣고 싶지 않았다. ‘해킹’(시스템의 관리자가 구축해놓은 보안망을 어떤 목적에서건 무력화시키는 모든 행동)에 방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시 해킹, 대입 해킹, 학부모 해킹, 학교 해킹, 학생 해킹 등 교육과 연관된 모든 것을 대입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교육 목표와 동떨어진 방식으로 제도를 교란하고 이용하는 여러 주체의 해킹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수능이 지금과 같은 ‘퍼즐 맞추기 게임’으로 전락한 것은 한 집단이나 특정 기관의 잘못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을 외면하고 욕망의 소리에만 귀 기울인 결과다. 평가원은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대학은 서열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자, 학부모는 내 자녀만 좋은 대학을 보내면 된다는 염원으로, 언론은 대학 순위 평가로 학벌 차별을 부추겨 이익을 취하며 지금껏 수능 해킹을 자행해왔다고 생각한다.

병을 고치려면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의 수능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변질됐는지 모른 채 공정을 운운해서는 곤란하다. 강남 학원가에서 기형적으로 수능을 훈련한 고득점자가 인기 대학에 진학해 전문직으로 일하거나, 사회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교육의 실패는 곧 사회의 실패로 귀결된다. 때문에 수능, 나아가 현 대입의 폐단은 교육 종사자만이 아닌 사회가 더불어 고민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바로 서길 간절히 바라며 <수능해킹>이 논의의 단초가 되길 희망한다.

Q. 그렇다면 수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수능을 당장 자격 고사화해야 한다거나 전면 철폐를 거론하는 건 너무 멀리 간 주장이다. 수능의 폐단을 입시 전체의 문제로 비약하는 것 또한 곤란하다. 수능을 없애고 수시를 전면화한다고 해서 스타 강사의 영향력이 줄고 사교육 업체가 콘텐츠 생산을 멈출까? 그렇지 않다. 그러니 수능이 아닌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공교육 현장과 수시, 수능은 분리된 요소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 장치를 올바로 고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교육의 방법론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될지’ 부분적으로나마 결정되는 ‘학생’에 주목해야 한다.

입시 과정에서 겪는 여러 요구 사항이 과연 학생의 삶에 필요한 내용인지, 그 수준이 학생에게 적절한지, 학생은 제도와 공교육을 통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 교육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후에 제도를 바꾸고 최종적으로 학생이 입시를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아닌 ‘대학의 준비 단계이자 실질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해야 한다.

공교육의 핵심은 다음 세대를 한 사람,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지 ‘입시 성공자’를 양성하는 게 아니잖나. 더 늦기 전에 교육의 전 과정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고된 실패로 가는 길, 이제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취재 김한나 ybbn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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