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부모 ‘의정갈등’ 장관들 고발

2024-07-11 13:00:19 게재

공수처에 ‘직권남용혐의’로 … 잇단 복귀 유인책에 전공의·의대생 ‘냉담’

의대생 학부모와 의대 교수 등이 교육부 장·차관을 한국의학교육과정평가원(의평원)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다. 앞서 지난 1일에도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 규모 ‘2000명’을 본인이 결정했다고 밝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병원과 강의실을 다섯달째 비우고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복귀를 유인하기 위해 특혜 논란을 빚으며 파격적인 유인책을 내놨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냉담하다.

의료계 법률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와 방재승 전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 의대생학부모모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11일 공수처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오석환 교육부 차관,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 등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평가 앞두고 직권남용해 업무 개입” = 이들은 교육부가 의평원 이사회 구성을 바꾸고, 의평원이 평가인증 기준을 바꿀 때 교육부 산하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받으라고 요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의평원은 교육부의 인정을 받아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평가·인증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전국 의대들은 의평원으로부터 의대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에 대한 평가 인증을 2년이나 4년, 6년 주기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입학정원의 10% 이상 증원’ 등 의학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화’가 생길 경우에도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의과대학 가운데 증원 폭이 작은 연세대(미래캠퍼스)와 인제대(각 7.5%)를 제외한 30개 대학은 ‘주요 변화’로 평가를 받게 된다.

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하는 의대는 신입생 모집이 정지되거나 신입생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의평원 평가를 앞두고 교육부 장·차관이 직권을 남용해 업무에 개입했다”며 “고등교육법 등은 의평원의 의사결정 독립성과 교육부의 불개입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평원의 독립적, 객관적, 공정한 평가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며 “의평원에 법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해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유급 방지대책을 발표한 10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의평원도 ‘독립성·자율성 침해’ 반발 = 의평원도 의학교육 평가 기준에 대한 교육부의 사전심의 요구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평원은 10일 입장문을 내 “평가·인증의 기준, 방법 및 절차 등은 교육부 산하 인정기관심의위원회의 ‘사전 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평원은 “인정기관 지정 기준을 충족해 지정 또는 재지정을 완료한 기관이 기준, 방법, 절차를 변경할 때마다 사전에 심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정 여부를 판단하는 건 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본과 4학년 95% ‘의사 국시 거부’ = 또한 교육부는 의대 증원에 반발해 5개월째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복귀를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학사 운영 대책을 내놨다.

교육부의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각 대학의 성적 처리 기한은 1학기 말에서 학년도 말인 내년 2월 말로 미뤄진다. 이에 따라 유급 판단 시기 역시 내년 2월로 연기된다. 1학기에 수업을 거부하고 교과목을 정상 이수하지 못했더라도 2학기에 몰아서 수업을 들으면 유급이 안 되도록 한 것이다.

본과 4학년의 경우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위해 실습을 마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1학기에 못 한 실습은 2학기에 하고, 그마저 어려우면 졸업 직전인 내년 1~2월에 할 수 있게 했다. 또 실습시간 부족으로 올 9월부터 진행되는 의사 국시 응시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국시 추가 실시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의대생은 “의대생 대부분이 증원을 백지화해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의사 국가시험 응시 예정자인 전국 40개 의과대학 본과 4학년(30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2903명)의 95.52%(2773명)가 국가시험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가시험 응시 예정자 대부분이 응시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앞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지난 달 국가시험 시행 계획을 공고했다.

응시 대상자 확인을 위해 각 의대는 졸업 예정자 명단을 6월 20일까지 국시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응시 예정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가 필요하다. 국시원에 따르면 개인정보 제공을 하지 않을 경우 의사 국가시험 접수가 불가능하다.

◆전공의 복귀 기미 없어 = 한편 전공의들도 지난 8일 정부가 복귀를 유인하기 위해 발표한 대책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 소식이 담긴 뉴스의 링크를 걸어두고 “나도 안 돌아간다”고 남겼다.

정부는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철회하기로 하고 9월 전공의 모집에 특례를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박 위원장은 “우리의 요구는 단호하고 분명하다”면서 전공의들의 기존 요구사항을 고수했다.

전공의들은 집단사직 이후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기구 설치 등 7개 요구를 정부가 수용할 것을 주장해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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