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 확대
첫 일주일이 한국사회 적응여부 좌우
조기정착 위해서는 지자체 역할 중요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은 완전히 다른 체제와 사회환경 때문에 한순간 좌절하거나 심지어 한국에 온 걸 후회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들이 마주치는 첫번째 사람, 첫번째 일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빠른 적응 여부가 결정됩니다.”
12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11일에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인권 포럼을 열었고 그간 간헐적으로 진행하던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을 한데 묶은 종합계획도 수립했다.
서울시가 이처럼 지원 확대에 나선 것은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을 지정하는 등 관련 환경이 조성된 탓이 크다. 하지만 지원사업 현장에선 서울시가 지난해 북한이탈주민들과 가진 간담회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탈주민들이 겪는 생생한 어려움을 듣고 그간 정부(통일부)에만 의존했던 방식을 벗어나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고 이후 해당 업무에 대한 서울시의 비중, 예산 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조성됐던 남북협력기금을 이탈주민 지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례가 개정되면서 사업 전반에 활기가 돌게 됐다.
◆북한이탈주민은 사실상 ‘난민’ = 북한이탈주민 지원 정책은 대치 국면인 남북 관계와 이를 대하는 정권별 접근방식이 크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간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장전문가들은 정치색이 아닌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군사분계선 북쪽을 한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탓에 법적 지위는 부여받기 어렵지만 사실상 이들은 ‘난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통일부 산하 지역적응센터 관계자는 “나라만 다른 게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는 체제가 완전히 달라 금융거래, 줌회의, 수급자 신청 등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리게 된다”며 “하지만 집을 구하고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일자리를 찾는 등 첫번째 사회 준비과정, 이른바 골든타임을 잘 넘기면 빨리 안정감을 찾고 경제 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조기에 정착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제3국 출생 자녀 갈수록 늘어 = 북한이탈주민 지원과 관련 최근 늘어나는 고민은 ‘제3국 출생 자녀’ 문제다. 탈북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으로 직접 이동이 아닌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입국하는 이들이 북한이탈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신변 보호 등을 위해 현지인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낳은 자녀들은 한국에 와도 북한이탈주민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다. 18살이 되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한국을 선택하면 곧바로 군 입대 문제와 부딪힌다. 북한이탈주민 자녀에 제공되는 대학 특례입학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사각지대를 보완할 법·제도적 개선과 함께 현장에서 가장 반기는 것은 지자체의 관심과 참여다. 정부 지원도 요긴하지만 아무래도 생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들을 살피고 적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은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지역적응센터 관계자는 “서울시가 지원을 늘리면서 이탈주민들이 임대아파트에 처음 입주할 때 식기류는 물론 TV와 작은 가전들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불안과 우울에 빠지기 쉬운 이들에게 안정된 생활 환경이 제공되면 정착률이 크게 상승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은 3만1377명이며 이 가운데 서울에 사는 이들이 6391명이다. 시는 기초물품과 초보적인 복지 서비스에 머물던 기존 지원정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일자리 지원사업도 시작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서울런 수강 대상에 북한이탈주민 자녀를 포함했다. 특히 현장 호응이 큰 분야는 위기가구 발굴이다. 2019년 굶주림으로 사망한 채 발견된 탈북민 모자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을 찾아내 긴급 지원을 실시한다. 건강검진, 치과 진료 등 의료 지원도 확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 특성상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며 “사회적 약자인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일자리, 생활, 건강, 교육 등 체계적이고 빈틈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