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해고 근로자 직접 고용해야”
2015년 노조 결성하자 문자 해고 … 1·2심 근로자 승소
대법, 원심 유지 … 파견법 위반도 유죄 취지 파기환송
일본 다국적 기업인 아사히글라스가 사내 하청업체 해고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고 근로자들이 지난 2015년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고 소송을 제기한 이후 9년 만에 불법파견이 인정돼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11일 하청업체 해고 근로자 23명이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과 피고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본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GC화인테크노는 디스플레이용 유리를 제조·판매하는 회사로, 근로자들이 소속됐던 주식회사 GTS는 유리기판 제조과정 중 일부 공정에 관한 업무를 수급하고 AGC 화인테크노 공장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지난 2015년 7월 GTS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하청업체인 GTS도 일방적으로 178명 근로자들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된 근로자들은 도급업체인 아사히글라스에 파견돼 업무를 수행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로는 아사히글라스의 지휘명령을 받았으므로 파견법에 따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에는 근로자 파견이 금지된다. 또 파견법은 사용 기한을 2년으로 제한하는데,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원청은 직접고용 책임이 있다.
1·2심 재판부는 AGC 화인테크노가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실질적인 지휘, 명령을 받는 노동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피고는 원고들에게 고용의사를 표시하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작업지시서 등을 통해 도급인의 지시권, 검수권 범위를 넘는 정도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행사해왔다”며 “협력업체 GTS 소속 현장관리자가 있었더라도 그 역할은 원청인 피고의 지시를 전달하는 수준에 불과해 그 역할과 권한이 통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GTS의 현장관리자들의 역할과 권한은 AGC화인테크노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를 근로자들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며 “GTS 근로자들은 AGC화인테크노의 글라스 기판 제조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GTS는 AGC화인테크노가 결정한 인원 배치 계획에 따라 근로자를 채용해 현장에 배치했고, GTS 근로자들의 작업·휴게시간과 휴가 등은 AGC화인테크노의 생산계획에 영향을 받았다”며 “GTS는 설립 이후 AGC화인테크노로부터 도급받은 업무만 수행했고 도급 계약이 해지되자 폐업했으며 생산 업무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형사·행정 사건에 대한 판단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날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식회사 정재윤 전 GTS 대표·주식회사 GTS·AGC화인테크노코리아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견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앞서 1심은 정재윤 전 GTS 대표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 주식회사 AGC화인테크노한국에게 벌금 1500만원, GTS 법인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2심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다만,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GC화인테크노가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 결정에 불복해 낸 소송(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AGC화인테크노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AGC화인테크노가 GTS와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취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