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 보장, 교육격차 해소 정책 펴겠다”
서울교육감에 진보 정근식 당선 … 50.24% 득표율로 당선 확정, 2위 조전혁 45.93%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정근식 후보가 당선됐다. 보수 진영이 우여곡절 끝에 조전혁 후보로 단일화했지만 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근식 당선인은 17일 “통합과 치유의 교육감이 되겠다”고 밝혔다.
◆2022년 조희연 득표율 38% 크게 웃돌아 = 정 당선인은 50.24%(96만3876표)의 득표율로 45.93%(88만1228)를 얻은 조전혁 후보를 4.31%p 차로 앞서 승리했다. 3위인 윤호상 후보의 득표율은 3.81%(7만3148)였다. 정 당선인의 득표율은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직이었던 조희연 전 교육감의 최종 득표율 38.10%를 크게 웃돌았다. 조 전 교육감은 2014년 초선에서는 39.08%, 2018년 재선에서는 46.5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역대 교육감 선거 중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2012년 보궐선거 당시 보수 후보였던 문용린 후보(54.17%)가 유일하다.
◆“교육 외적인 요소 영향”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23.5%로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2008년 선거 이래 가장 낮다. 최근 단독으로 실시된 교육감 보궐선거인 지난해 4월 울산시교육감 선거 때의 26.5%보다 3.0%p 낮은 수치다.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에 유리하고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가 유리하다는 선례가 깨졌다. 2위인 조전혁 후보와 3위인 윤호상 후보의 표를 합쳐도 정 당선인의 득표에 미치지 못했다. 교육계는 “이번 선거는 교육 외적인 요소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은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진영 조전혁 후보의 역사관과 전면 개편을 공약한 교육정책보다 현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취약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안정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 후보가 선거 기간 ‘뉴라이트 친일교육 심판’을 구호로 내세우며 조 후보와의 차별성과 선명성을 부각한 것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전국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서울에서 더 많은 표를 확보했지만 최근 지지율 최저를 기록 중인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 장기화, 이에 따른 대입 불확실성 확대 등 교육 환경 변화도 표심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 당선인은 독자 출마에 나섰던 최보선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성공해 민주진보 진영의 표 분산을 막은 것도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 보수진영 역시 조 후보로 단일화 했지만 독자 노선을 걷는 윤호상 후보도 중도보수를 표방하면서 표가 분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진보진영은 조희연 전 교육감이 2014년 선거부터 3선에 성공한 후 이번 보궐선거까지 4연속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조희연 전 교육감 핵심정책 계승 = 정 당선인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 당선인은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핵심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약했다. 조 전 교육감과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1년 차이 선후배(75, 76학번)로 청년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 부당 채용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직을 잃은 것에 대해서도 정 당선인은 “시대적 아픔을 치유한다는 맥락에서는 누구도 비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법적인 절차를 잘못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시대의 아픔을 같이하려고 했던 해직교사의 복직 문제는 시대적 과제였다”고 주장했다.
정 당선인은 17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대한 서울시민의 승리”라며 “서울교육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당선인은 “기초학력 보장, 교육격차 해소와 관련된 정책을 제일 먼저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기간 중 일각에서 우려하는 학력 저하를 보완하고자 기초학력 부진, 경계선 지능, 난독·난산 등을 겪는 학생에게 전문적 진단을 실시하고 맞춤형 교육을 하는 인프라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당선인은 학력평가보다는 학생 개별 잠재력을 키워주는 맞춤형 학습에 주안점을 두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기초학력을 강화하고자 서울시교육청과 대학 간 협업으로 ‘학습진단치유센터’를 설치하고 시험 없이도 학생의 학습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서울형학습나침반’을 설계한다는 계획이다.
교육행정에서 중점으로 두고 싶은 부분에 대해 “정부가 발표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 비용 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또한 “왜곡된 역사의식이 교육현장에 발붙이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당선인은 지역·계층 간 교육격차를 파악하기 위한 ‘서울교육 양극화 지수’ 개발도 약속했다. 역사사회학자로서의 강점을 살려 교육청 내 역사위원회, 역사교육자료센터를 만드는 등 역사교육도 강화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책무성 부분을 보완해 존치하고 야권에서 추진 중인 학생인권법 제정에도 힘을 실을 전망이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