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전공의 수련 특례, 탄압 수단”

2024-07-12 13:00:43 게재

의대 교수들 “이번엔 ‘사직서 수리 명령’이냐”

고대의료원 교수들 12일부터 무기한 자율 휴진

의정갈등의 불씨가 이번에는 정부의 ‘전공의 복귀 대책’으로 옮겨 붙었다. ‘9월 모집에 응시하지 않는 전공의는 내년 3월 복귀가 불가하다’는 정부 발표에 의대 교수들이 ‘갈라치기’라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주춤하던 의정갈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에 이어 고려대 의료원(고대의료원)도 의대 정원 증원과 전공의 사직 처리 등에 반발해 12일부터 진료 축소에 들어갔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37개 수련병원 교수들은 ‘사직한 전공의들이 9월 전공의 모집을 통해 복귀하지 않으면 추후 수련 특례를 적용받지 못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전공의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수들은 11일 보도자료를 내 “차별적, 선택적 수련특례 적용은 복지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관련 규정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특례는 보통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복지부 특례 적용은 전공의들을 위협하고 탄압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이어 “이번에는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아니라 ‘사직서 수리 명령’이냐”며 “앞서 복지부는 전공의 당사자 간 법률관계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언급한 만큼 사직서 수리에 관여하지 말고 전공의와 병원에 대한 위헌적 명령과 조치를 즉시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갈라치기에 2년 의료공백” =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보도자료를 내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전의비는 “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공언과는 반대로 전공의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 병원과 한국 의료의 붕괴가 빨라지고 향후 2년 간의 의료 공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2025학년도 의대 증원안부터 다시 검토하는 등 근본적인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갈등 속에서도 9월 전공의 모집을 위한 수련병원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은 전공의들에게 오는 15일까지 복귀·사직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정부가 각 수련병원에 이달 15일까지는 전공의들의 복귀 혹은 사직을 처리해 부족한 전공의 인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조치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거나 문자 메시지에 답하지 않을 경우 복귀할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자동 사직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 95% 가량이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열람실에 가운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다시 등장한 복귀 전공의 명단 = 또한 복귀한 전공의들의 실명을 공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방이 다시 등장했다. 해당 채팅방에는 지난 11일부터 ‘감사한 의사’, ‘감사한 의대생’, ‘감사한 전임의’라는 이름의 리스트가 실명과 함께 올려져 있다. 의대생은 학교·학년·이름이, 전공의는 병원·진료과·연차가, 전임의는 병원· 진료과·출신학교·이름 등의 정보가 실려있다. 리스트에 실린 명단은 의료 현장에 남아있거나 복귀해 일하고 있는 전공의,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전임의(펠로), 집단 수업거부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의대생으로 추정된다. 개설자는 특히 9월 복귀 전공의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암시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현장의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의 명단을 공개하는 블랙리스트 글들은 전공의 이탈과 전임의 수업거부 사태 이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10일 현재 전체 수련병원 211곳의 전공의 1만3756명 중에서는 1096명(8.0%)만 출근 중이다. 복지부가 특례 조치를 밝힌 지난 8일(1095명)과 비교했을 때 출근자는 1명 늘었다.

◆충북대병원도 26일부터 휴진 = 한편 고려대 의료원 교수들이 12일부터 응급·중증 환자를 제외한 일반 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무기한 자율 휴진에 들어갔다.

앞서 고려대 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에서 교수 80% 이상이 휴진에 찬성했다. 교수들은 개인 연차 등을 이용해 휴진에 참여하고, 1·2차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연계할 예정이다. 응급·중증 환자 진료는 정상적으로 이어간다.

앞서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지난달 27일부터 개별적으로 휴진을 이어오는 가운데 서울아산병원은 이달 4일부터 진료 축소에 들어갔다. 오는 26일에는 충북대병원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시작한다.

정부는 고대안암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수련병원들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급여 선지급을 보류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온 수련병원들은 정부에 건강보험 급여를 미리 줄 것을 요청했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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