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구조개편 논란…“돈 안들이고 ‘알짜 기업’ 지배”
강제 상폐 당하는 밥캣…캐시카우 뺏긴 에너빌리티 주주 반발
지배주주 유리·소액주주 이익 훼손…밸류업 정책 실효성 지적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두산 오너 일가가 돈 안들이고 사실상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는 알짜 기업 ‘두산밥캣’ 지배력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강제로 상장폐지 당하는 두산밥켓 주주들과 캐시카우를 빼앗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며 올 초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가치제고 계획(밸류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로보틱스의 밥캣 인수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 =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다음 날인 12일 상승했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1 거래일 만에 각각 10.26%, 11.54% 하락 전환했다. 특히 밥캣은 주식 매수청구권 가격(5만459원) 이하로 떨어졌다. 밥캣 주주들은 주식을 팔지 않고 매수 청구를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상장폐지 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공시했다. 해당 계획은 총 2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 법인과 두산 밥캣의 지분(46.11%)을 보유하고 있는 신설회사로 인적분할 후, 해당 신설회사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그 후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잔여지분을 포괄적 주식 교환 방식을 통해 취득해 두산밥캣을 100% 자회사로 두게 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인적분할된다. 신설회사는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두산에너빌리티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사업회사 75주와 두산로보틱스 3주를 갖게 된다.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된다.
합병비율 적정성 논란이 불거진 것은 굴착기 등 소형 기계를 생산하는 두산밥캣은 매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 그룹 내 알짜기업인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아직 적자를 내는 상황이라는 점 때문이다. 두산밥캣의 경우 지난해 매출 9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기록한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불과하고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두산밥캣은 저평가, 두산로보틱스는 고평가됐다. 지난해 기준 주당순자산가치(PBR)는 두산밥캣이 0.49배, 두산로보틱스는 11.38배다.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말 상장한 로보틱스는 아직도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하고, 작년 매출 대비 시가총액 (PSR)이 100배가 넘는 초고평가 상태로서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합병 비율 산정은 적법하다. 주가는 고평가·저평가를 반복하는데, 존속회사의 기업가치가 높은 시점에 합병을 결정함으로써 소멸회사 주주 이익이 침해됐다는 것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신용 ‘부정’ … 지주사 두산 ‘긍정’ =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입장에서도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겨주는 게 달갑지 않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개편으로 두산에너빌리티는 배당수익기반 및 재무대응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산밥캣으로부터의 배당금 수익(2022년 921억원, 2023년 753억원)이 영업이익에 반영되었던 만큼 분할존속회사의 수익구조가 다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할합병으로 인해 밥캣을 통한 배당수익기반이 소멸되는 점이 두산에너빌리티의 관점에서 볼 때 직접적인 부정적 요인에 해당한다. 최재호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또 분할 이전에는 2조2000억원에 달하는 밥캣 지분을 투자자산으로 보유함으로써 담보가치를 활용한 재무융통성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대응력을 보강하는 요인이었으나, 분할신설법인에 이관됨으로써 약화될 예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두산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서 변수가 될 이슈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의 결정에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편으로 기타 주주가 반대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계열 최상위기업인 두산의 밥캣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최 실장은 “지주사인 두산은 배당수익기반이 제고되고 로보틱스 직접 지원 부담이 완화될 전망”이라며 “사업지주사로서 자체사업과 함께 배당수익, 브랜드사용료 등 지주부문을 보유한 가운데 밥캣을 통한 배당수익이 추가됨으로써 지주부문 수익기반이 한층 제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날벼락 맞은 주주들 = 시장에서는 수익성 높은 자회사를 비상장화함으로써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밥캣의 해외 주주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이익 창출력과 배당에 기대를 했던 투자자들의 이탈도 예상된다.
알짜인 두산밥캣을 떼어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70% 일반주주들과 연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3000억원이 넘는 상장회사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들은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두산밥캣 주주는 두산그룹의 구조개편이 싫으면 그냥 최근 주가로 현금을 받고 주식을 회사에 팔아야 한다. 글로벌 초우량기업에 직접 투자해 기업성장혜택을 공유하려고 했던 일반 주주들이 고평가 로봇 테마주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을 당하던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한국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매출 규모가 183배 차이나는 두 계열회사 주식을 1:1 (금액기준)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드는 30년 묵은 자본시장법 시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런 가격과 시기에 엄청난 고평가 테마주인 로보틱스 주식과 교환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게다가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 보호의무도 없다. 최근 기업들이 연이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면서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시장이 기대했던 밸류업 정책의 주요 내용은 배당소득 증대세액공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경영권 방어 목적의 자사주 취득 허용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 발표된 정책은 주주환원 증가금액의 5% 법인세 세액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에 그쳤다.
한편 두산은 이번 분할합병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는 SMR(차세대원전) 및 에너지사업에 집중할 수 있고,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의 네트워크를 통해 북미·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성장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주주가치도 제고할 수 있다는 게 두산의 입장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두산밥캣을 내어준 두산에너빌리티 일반 주주 역시 이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떼어주는 두산밥캣 가치보다 새로 받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에게 유리한 거래”라며 “보유 주식 가치가 약 4.7%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