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법대 출신들이 벌이는 ‘무법’ 전당대회

2024-07-18 13:00:04 게재

‘인공지능(AI) 시대’에 정치권만 야만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걸까.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점입가경이다. 당 대표 후보자 4명과 이들의 지지자들 간 비방과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는 의자를 집어던지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트럼프 저격미수 사건에 빗대 “총 대신 의자만 들었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가 이처럼 난장판이 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1970년대 각목 전당대회 떠올리게 해

과거 독재시절 야당의 전당대회나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종종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주로 정권의 사주나 비호 아래 벌어진 일이다. 195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발생한 장면 부통령 피격사건이 대표적이다. 장면은 야당 소속 부통령에 당선된 뒤 취임 한 달여 만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가다 괴한이 쏜 총에 맞았지만 간신히 목숨은 건졌다. 사건배후로 부통령에 낙선한 이기붕과 자유당 등이 거론됐다.

1976년 5월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전당대회가 열렸다. 김영삼에 밀리던 이철승은 박정희정권의 비호 아래 조폭 김태촌파를 동원해 당사를 습격하고 도끼와 각목을 휘두르며 전당대회를 아비규환으로 몰고갔다. 이른바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이다. 1987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유명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도 정권과 조폭이 결탁한 전당대회 폭력사태다.

반면 집권여당에서는 형식적인 전당대회가 이어졌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여당 전당대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대통령=당 총재’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선후보로 뽑히는 자리에 참가하지 않았다. 1970년대 유신시대 여당은 전당대회를 열지도 않았다. 전두환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체육관 전당대회’를 열었다.

1987년 개헌 이후 여야 정당들은 형식적이나마 민주적인 절차를 지켜왔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치열한 경쟁과 상호 비방은 있었지만 결과에 승복했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다.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 현 상황이라면 누가 되든 당을 장악하기 쉽지 않다. 이미 심리적 분당상태여서 이를 봉합하기 어렵다. 의원들을 좌지우지할 공천권이 없어 당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도 당대표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정부실책이나 대야 정쟁과정에서 상처만 입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은 매우 의아해 한다. 어제까지 한몸처럼 보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후보가 왜 갑자기 ‘원수지간’이 됐는지. 배신자는 뭐고 김건희 여사 문자는 뭔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까지 용산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측근이 왜 ‘친한’ 의원이 돼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지 알 수가 없다. 돈과 자리를 두고 배신이 난무하는 조폭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도 많다. 비상식이다. 오로지 권력에 눈이 멀었다는 이유 말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법 잘아는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최근 20대 여성이 36주 된 태아를 낙태(임신중단)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낙태는 형법상 불법이었지만 2019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며 낙태죄가 없어져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헌재는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을 요청했지만 5년이 지나도록 관련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정쟁 속에 35건의 위헌, 헌법불합치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 이 가운데 개정시한을 넘긴 헌법불합치 법률이 9개에 달한다. 방치된 민생관련 법안도 수두룩하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폭력사태는 일부 극렬 지지자들 사이에 벌어지긴 했지만 사실상 후보들의 책임이 크다. 상호비방, 폭로가 난무한 언어폭력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건 예견된 사태다. 특히 후보들은 모두 서울대, 그중 경제학 전공인 윤상현 후보를 제외한 나경원 원희룡 한동훈 세 사람은 모두 법대 출신이고 전직 판사 검사들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평소 입버릇처럼 ‘헌법과 법률’을 강조해온 정치인들이다. 관련 후보들은 네 탓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민생외면과 비상식적 정쟁이 여당만의 책임은 아니다. 과거 사색당파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구중궁궐 왕의 친인척 간 족벌싸움에 국력은 쇠약해져 왜란 호란을 당했다. 종국에는 나라까지 잃은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차염진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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