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만명 수련병원 떠난다
병원들, 사직 처리 후 결원 제출 … 교수·전공의 반발 이어져
수련병원들이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직 처리에 들어가면서 1만여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게 됐다. 정부는 오는 22일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각 수련병원에 17일까지 전공의들의 사직 처리를 완료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하반기 모집을 통해 복귀할 수 있도록 전공의들을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병원장들에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평행선을 걷고 있어 의료대란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수련병원들은 전날까지 미복귀 전공의 사직 처리를 마치고, 결원 규모를 확정해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 제출했다.
전공의들이 사직 또는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병원들 대부분이 이들 ‘무응답’ 전공의들을 사직 처리하기로 했다.
각 수련병원은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위한 결원 규모를 확정하려면 복귀 의사를 보이지 않는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해야 한다.
대다수 전공의들은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정부는 오는 22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사직 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집 정원 신청이 불가능하다.
전공의 중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사직률은 복귀·사직 의사를 마지막 확인한 지난 15일 기점으로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6일 기준 전국 수련병원 211곳의 레지던트 1만506명 중 1302명(12.4%)이 사직 처리됐다. 16일 하루에 사직 처리한 레지던트만 1216명이다.
같은 날 기준 서울 주요 5대 병원을 뜻하는 ‘빅5’ 병원의 레지던트 사직률은 38.1%(1922명 중 732명)로 더 높았다.
하지만 전공의 사직 처리를 둘러싼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면서, 수련병원장들을 향해 전공의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다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병원장들은 하반기 전공의 모집의 꼼수를 따르다가 소속 전공의를 수련병원에서 더 멀어지게 함으로써 필수의료 몰락으로 이어지는 패착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라”고 강조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병원이 일괄 사직을 강행한다면 스승인 교수들과 전공의들과의 사제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비대위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에 보낸 서신에서 “전공의들의 거취는 전공의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사직을 희망할 경우 2월 29일로 처리해야 한다”며 “정부의 지시대로 6월 4일 이후 일괄 사직이 처리될 경우 다수의 교수가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응답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는 미래 의료 주역들의 인권을 짓밟는 처사”라며 “일괄 사직을 강행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전공의들과의 사제관계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병원장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전협 비대위는 퇴직금 지급 지연, 타 기관 취업 방해 등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침해한 병원장에 대해 형사 고발, 민사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며 “사직한 전공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불합리한 정책과 위헌적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거대 권력에 굴복한 병원장들에게 유감의 말씀을 전한다”며 “전공의를 병원의 소모품으로 치부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병원장들의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의사단체들의 반발 속에서도 정부는 일정대로 하반기 모집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하반기 모집에 전공의들이 얼마나 지원할지는 미지수다. 의료계 등에선 이번 하반기 모집에 특례를 주더라도 전공의들이 지원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