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의 미국·일본·중국 사이 3각 권력게임 곡예

2024-07-19 13:00:01 게재

각국 고유 외교가 아세안 중심성 약화시켜선 안돼 … 강대국 사이 균형잡힌 관계가 ‘최선’

동남아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미국, 일본 및 중국의 국제적 평판을 이렇게 묘사한다. 중국은 부상하며(a rising China), 일본은 신뢰받고(a trusted Japan) 미국은 영향력이 줄고 있다(a declining America). 이는 앞으로 수년간 동남아에서 글로벌 지정학적 지형을 강요할 세 개의 톱니라 하겠다.

아세안은 날로 격화되는 지정학적 경쟁 한가운데에서 그 지형이 축복이나 저주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처해 있다. 아세안은 여전히 이 3자 간의 긴장 완화를 지원하거나 긴장 악화를 부추길 능력을 갖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 어느 일방이 특정 방향으로 기우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 이는 아세안의 작동 방식을 뒤흔들 수 있다.

지난해 9월 6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맨 왼쪽),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 세번째), 리창 중국 총리 등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동아시아정상회의 활용한 아세안 외교력 = 동남아 각국은 그 자신의 고유 외교를 하지만 이것이 아세안의 주요 입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가까운 장래에 아세안이 채택할 세 개의 시나리오를 분별해 볼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미일중 3대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협력할 때 그들의 노력은 동서양, 즉 보다 광범위한 국제사회 간의 불안과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이 교란되면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가 추악한 머리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아세안은 아세안 주도 메카니즘인 대화와 협력 프레임워크를 활용하여 미묘한 국제 관계를 항해할 수 있었다. 2005년 이래 이 3대 강대국 지도자들은 아세안이 의장국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매년 회동한다. 이 플렛폼은 이들 지도자들이 의견 교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동남아 지역에서 줄어드는 영향력에 상관없이 이제 동아시아정상회의를 전략적으로 보다 광범위한 인·태지역을 아우르는 틀로 만들고 EAS를 중국과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점은 또한 왜 아세안의 가장 신뢰받는 지역 파트너인 일본이 이제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2017년 이래 일본은 아세안, 특히 필리핀 및 베트남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중국의 위협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의 신규 ‘공적안보원조’ 프로그램은 이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2개 회원국을 수원 국가로 확보하였다. 미국으로서는 비용 분담과 광범위한 전략을 실행하는 다리로 동맹국이나 파트너국을 이용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세안은 일본의 인태전략 강력 지지 = 고 아베 행정부와 현 기시다 행정부 하에서 일본은 미국을 핵심 아세안 회원국들과 경제.전략 문제에서 연계시켜 왔다. 한 가지 두드러진 예는 사문화된 TPP 자유무역협정을 부활시키는데 있어서 일본의 역할이다. TPP는 2017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미국을 탈퇴시킨 협정이다. 일본은 TPP의 핵심 내용을 유지하기 위해 포괄적·점진적 TPP(CPTPP) 라는 대안을 출범시켰다.

또 다른 예는 2년 전 도쿄에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이다. 이는 미국이 TPP에서 탈퇴한 후 거대 아세안 경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일본의 권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아세안은 일본의 자유·개방 인태정책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일본은 아세안 회원국들 사이에서 높은 신뢰 수준 덕분에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소재 동남아문제연구소에서 가장 최근 발표한 ‘동남아의 상태’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일본은 동 조사가 15년 전에 시작된 이래 아세안의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작년 12월 일본과 아세안은 전략 계획과 공동 비전을 채택하였다. 일·아세안 관계 50주년을 기념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일본이 아세안과의 협력을 계속 심화해 나가는 한 일본의 대중국 관계는 개선될 잠재력이 있다. 일본이 대아세안 관여정책의 진폭을 늘리려면 자신의 독립적 외교정책을 장기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은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세안은 일본의 자유개방 인태전략을 포함하여 일본의 비전과 행동계획을 전폭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본의 정책이 미국의 대중 억제 전략의 산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미국 영향, 커지는 중국 영향 =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은 아세안-일본 관계에 새로운 금지선이 될 수 있다. 아세안 회원국을 포함하고 강력한 미·일 전략적 추진력을 갖춘 소다자 협의체는 아세안을 양극화 할 수 있다.

동남아문제연구소 조사 보고서는 또한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보여 주었다. 4월초 발표된 동 조사보고서는 50.5%의 아세안 회원국 시민들이 만약 선택을 해야 한다면 중국과 기꺼이 보조를 같이 할 의향을 보여 주었다. 작년 조사 때 동 비율은 38.9%였다. 미국에 대한 수치는 49.5%로 이는 일 년 전의 61.1%와 비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불신은 50.1% 수준이었다.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의 주권과 이익을 위협하기 위해 그 자신의 정치.경제적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에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애정/두려움” 양분법 문제는 중국이 심사숙고하면서 관리해야 할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지난 5월, 4년 5개월 만에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3국 정상은 3국 협력이 아세안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점을 평가하고 3국이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 아세안 프레임워크의 맥락에서 3국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갈 필요성에 동의하였다. 이어 3국 정상은 아세안 중심성과 단결성에 대한 3국의 강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는 3국과 아세안 간 협력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정상 차원에서 부여한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요인은 오는 11월 미 대선이다. 지난 주말 펜실바니아주 대선 유세장에서 일어난 트럼프 후보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은 다시 한번 대선 판도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미국의 새 대통령 및 그의 세계 전략에 어떻게 반응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세안은 계속해서 미국과 아시아의 두 강대국 사이의 변화하는 지정학적 지형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이 명단에 올려 다루어야 할 다른 국가 군은 EU, 인도, 한국, 호주 및 러시아를 포함한다. 그룹으로서 또는 개별 회원국으로서 아세안은 계속해서 강대국들을 관여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푸틴까지 끌어들인 베트남 ‘대나무 외교’ = 한편, 아세안의 강대국 사이 균형 잡기와 줄타기 외교 관련, 최근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과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자카르타 포스트의 사설(‘평양 정상회담에 대한 아세안의 침묵’ 제하)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는 개별 아세안 회원국 레벨에서도 지역협력 기구로서 아세안의 줄타기 외교를 뒷받침 한다. 푸틴의 베트남 방문은 대나무 외교가 최고위급에서 생동감 있게 작동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지난 9개월 간 베트남은 바이든 미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달아 국빈으로 맞이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고위급 방문은 공급망 다변화를 열망하는 기업의 제조업 투자를 유치하는데 노련한 국가가 어떻게 그 나라의 국제 관계를 능숙하게 관리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베트남은 대미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베트남은 푸틴의 입단속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베트남 정부의 입장을 고려, 전날 평양에서와는 달리 베트남 지도자들과 대화 시에는 미국 비난은 자제하였다.

베트남 공산당은 국제 관계에 있어서 실용적이며 서방의 파트너국을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베트남은 국가 관계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외교관계인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국을 포함 주요 7개국과 체결했다. 베트남은 자국과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다양한 나라들과 역사나 이념·체제에 관계없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유연성을 보이는 대나무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베트남의 이러한 실용 외교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북.러 정상회담에 침묵하는 아세안 = 한편, 7월3일자 자카르타 포스트는 ‘평양 정상회의에 대한 아세안의 침묵’ 제하의 사설을 통해 아세안 10개 회원국 모두와 아세안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평양 정상회담에 대해 반응을 삼간 것은 올바른 일이었다고 논평하였다.

우리는 여기서도 강대국 관계에 있어서 아세안의 곡예와 균형 잡기 접근 방식의 일면을 간파할 수 있다. 국제 관계에서 어느 일방과 야무지게 손잡고 전력투구하기 보다는 두루두루 잘 지내면서 모두로부터 최대한 혜택을 이끌어 내려는 본능적 DNA는 아세안과 아세안 개별 회원국 모두의 정신세계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북·러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등 군사협력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인·태 지역의 안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를 동시에 위협하는 매우 위중한 사태 발전인 만큼 철저한 차단이 필요하다. 아세안을 포함 지구촌 공동의 이해가 걸려있는 만큼 국제 사회가 단합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러·북 군사협력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스스로 유엔 체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