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의 길, 파월의 길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승기를 잡자마자 세계경제와 시장에 민감한 사안인 금리 세금 관세 에너지 반도체 지정학적 문제 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 총기 피격 사건 이전인 6월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트럼프와 단독 인터뷰한 내용이 7월 16일 보도되자 미국 금융시장은 급격한 트럼프 트레이드(Trump trade) 현상을 보이며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노믹스’는 저금리·감세·고관세
이 인터뷰는 트럼프 자택인 마라라고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하면서 제시한 정책방향은 ‘어젠다47’에 포괄적으로 나와 있지만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보다 세부적이다.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인 이른바 ‘트럼프노믹스’를 저금리·감세·고관세로 요약했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국은 물론이고 우방인 유럽연합(EU)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트럼프는 대만과 관련 “대만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가져갔다. 그들은 엄청나게 부유하다. 우리는 그들의 보험에 불과하다. 왜 이걸 지켜주느냐”라며 반도체와 지정학적 문제를 언급하며 대만이 방위비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 중국 첨단 반도체 기술 봉쇄를 위해 결성한 ‘칩4동맹’에게도 방위비 등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담당하는 우리나라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되면 미국의 보호는 당위가 아니라 비용을 내는 선에서 조건부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포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대선 러닝메이트로 발탁된 J 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우리는 동맹국이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부담을 나누도록 할 것”이라며 방위비 분담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납세자의 관대함을 배신하는 나라의 무임승차는 더 이상 없다. 우리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우리 아이들을 전쟁에 파견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이기면 “새로운 관세를 도입하고 미국 동맹국과 적국 모두에게 무역 양보를 요구하며, 만료되는 세금감면을 갱신하고, 국내 에너지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더 많은 시추를 허용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암호화폐 산업을 활성화하며, 대형 기술 회사들(빅 테크)을 규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화석연료 옹호, 세금감면, 불법 이민 제한 등의 공약이 미국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액체 금(원유)을 보유하고 있다”며 원유 및 천연가스 시추를 늘려 유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집권 당시인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했는데 이를 15%까지 낮추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의 압박에도 금리인하로 가는 길 걷는 연준
미연방준비제도와 금리정책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은 뉴욕타임즈(NYT)의 표현을 빌리면 ‘트럼프 2.0 하의 연방준비제도’라 불릴 만하다. 트럼프는 “아직까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을 쫓아낼 계획이 없으며, 파월이 임기(2022~2026년)를 마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재선이 된다면 당장 파월을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표현이다. 사실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된 이후에 금리를 빠르게 내리길 원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트럼프에게 ‘경제에 대한 철학’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낮은 금리와 낮은 세금”이라고 답할 만큼 그는 저금리를 선호한다. 트럼프는 일단 선거 전까지 금리인하에 관해서는 “그들(연준)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규정했다. 선거 전에 금리인하가 이뤄지고 경제가 지금보다 활기를 띠게 된다면 그것은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업적으로 치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백악관이나 행정부와는 독립적으로 금리정책을 조율한다. 이미 트럼프는 지난 임기 중에도 이 때문에 파월 연준의장과 번번이 부딪혀왔다. 올해의 금리문제는 파월의 미 의회 상·하원 발언과 진전된 디스인플레이션 데이터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인하를 미룰 것 같지는 않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