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지하차도 잠겼지만 인명피해 막아
지자체들 오송참사 반면교사 삼아
현장위주 대응매뉴얼 바꾸고 훈련
AI차단기·물막이판 등 설치 효과도
최근 수도권과 중부권에 내린 폭우로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아찔한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1년 전 겪은 오송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지자체의 노력 덕분에 인명 피해를 초래한 사고는 아직 없다. 오송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현장위주로 대응매뉴얼을 바꾸고 신속히 대처해 대형사고를 막거나 자동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해 효과를 본 사례도 있다. 예고 없는 자연재난을 막을 순 없지만 철저히 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서울·경기 지자체들에 따르면 지난 17~18일 수도권에 집중된 폭우로 곳곳의 하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지하차도들이 침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 평택에선 18일 오전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세교지하차도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시는 이날 오전 6시 30분쯤 호우경보가 발령되자 도로관리과 직원들과 유지보수업체 인력·장비까지 현장에 배치했다. 오전 9시 30분쯤 업체 관계자가 지하차도에 배수가 되지 않는 것을 발견, 담당공무원과 상의해 차량을 통제했다. 오송 참사 이후 현장상황에 따라 ‘선 통제 후 보고’하도록 대응매뉴얼을 바꾸고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지하차도 양방향에 40여대의 출근 차량들이 있었는데 차량진입을 막고 우회시키는 과정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인근 도일천이 범람하면서 물이 지하차도로 쏟아졌고 차량을 통제한지 20분도 안돼 왕복 4차로, 길이 760m에 달하는 지하차도가 모두 잠겼다. 조금만 지체했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지난해 오송참사 이후 호우예비특보가 발효될 때마다 지하차도 진입 차단 훈련을 10여차례 해온 덕분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17일 오전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포구 월드컵천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고 인근 지하차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차량 통제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곳엔 ‘인공지능(AI) 침수방지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물이 차오르자 ‘위험’이란 경고문구와 음성경보를 송출하는 동시에 적외선 카메라로 영상정보를 수집·분석해 자동으로 차단기가 내려와 차량진입을 통제했다. 마포구는 지난해 9월 재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하천 옆에 자리한 월드컵천 지하차도에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기존의 차량통제 차단기는 사람이 직접 현장상황을 보고 작동시켜야 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수위에 따라 차량통제 차단기가 자동으로 작동해 최근 집중호우에 신속한 조치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폭우로 침수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도 인명피해가 발생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지자체마다 지하주차장 입구에 차수벽을 설치했는데 이 차수벽 효과를 본 사례도 있다. 지난 18일 충남 서산시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도로중앙의 우수관이 역류, 빗물이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밀려왔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차수벽을 펼쳐 빗물을 차단하고 물을 퍼내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차수벽은 서산시 지원을 받아 올해 5월 설치했다.
이처럼 지자체의 발빠른 대처와 예방시설 설치로 큰 피해를 막은 곳도 있지만 여전히 침수예방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들이 더 많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하차도 159곳(2023년 11월 기준)엔 인근 하천범람 등 침수위험을 고려한 통제기준이 없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폭우 시 지하차도 입구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이 설치된 곳은 전국 지하차도 1091곳 가운데 252곳(2024년 4월 기준)에 불과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저지대, 하천 인근 등 침수우려지역에 있는 184개 단지에 재난기금을 지원, 181개 단지는 자체적으로 차수판을 설치했다. 나머지는 예방시설이 없는 상태다. 도는 차수판을 설치하지 않은 아파트 가운데 187곳에 이달 말까지 침수예방 관련 현장자문을 진행 중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18일 세교지하차도 침수 현장과 재난대책본부를 방문해 “평택시의 신속한 통행차단으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신속한 대피 등 선제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곽태영 이제형 기자 tykwa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