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시침수 예방, 디지털 하수도가 답이다

2024-07-29 13:00:03 게재

안병옥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장마는 보통 6월 말부터 7월 말 무렵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역대 장마가 가장 길었던 해는 49일을 기록한 2013년과 2020년이다.

올해는 태풍 ‘개미’의 영향으로 장마가 끝나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장마철 강우 유형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렸지만 요즈음에는 국지성 집중호우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2~3년 간격으로 과거의 강우 강도를 뛰어넘는 기록적인 강수량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 세기 강해져

장마철 홍수 대책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과거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하천이 제방 너머로 범람하면서 주변 인구 밀집지대가 침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하천을 정비하고 제방을 높이면서 피해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빗물이 도시에서 하천으로 신속하게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하는 ‘침수 피해’가 하천 제방이 무너져 강물이 밀려드는 ‘범람 피해’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로 집중호우 세기가 강해지고 있음에도 하수관로와 빗물펌프장 등 도시 기반 시설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우리나라 빗물 배제시설은 대부분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건설됐다. 하수관로는 지선과 간선으로 구분되는데 강우 설계빈도가 각각 5년과 10년을 기준으로 적용돼 최근 자주 발생하는 100년 빈도 이상의 국지성 집중호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래전부터 환경부가 10~30년 만의 최대 폭우를 견딜 수 있도록 하수도 설계기준을 상향하고 ‘도시침수 대응 하수도 정비사업’을 추진한 것은 갈수록 사나워지는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와 한국환경공단이 사업을 마친 53개 지역에서는 침수에 따른 재산피해가 대폭 줄고 인명피해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기록적 폭우 군산시, 인명피해 없어

최근 주목을 받은 곳은 군산시다. 지난 7월 10일 군산시에는 시간당 131.7㎜의 비가 내려 기상청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과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약 111억원의 재산 피해를 기록했지만 인명피해는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12년 전 피해 상황과 대비된다. 2012년 8월 중순 군산 일대에는 시간당 64.7㎜의 폭우가 내렸다. 공장 46곳의 기계 설비가 물에 잠겼고 학교 8곳, 상가 2300여개소 등이 침수돼 총 493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시간당 강수량이 두배 이상 많았지만 재산피해는 1/4로 줄고 인명피해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군산시가 한국환경공단과 함께 10년 넘게 추진하고 있는 ‘도심 침수 예방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낡고 좁은 관로를 지름이 큰 관로로 교체하고 집중호우 시 빗물을 잠깐 저장했다가 나중에 방류하는 저류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지난 2018년 1단계 사업을 마치고 지금은 2단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로 교체와 펌프 용량 증대 등 구조적 해법만큼 중요한 것은 비구조적 해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산시는 집중호우가 시작되자마자 전 직원이 비상 근무에 돌입하고 산사태 위험지역과 급경사지 하천 유수지 등 침수 취약지역에 대한 예찰 활동에 나섰다.

또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비탈면 일대 거주 주민에게는 긴급 사전대피를 권고하는 등 재난대응체계를 신속하게 가동한 점이 주효했다.

하수도와 디지털 기술의 최적 조합 찾아

도시침수 대응사업 체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은 거대 자료(빅데이터)와 기상관측자료를 활용해 침수 이력 지도를 작성하고 실시간 점검 자료 분석과 침수지역 모의실험을 통해 내리는 비가 하수관로를 통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예측할 수 있는 시대다. 빗물 배제가 가능한 강우 강도 설정과 병목 구간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도 이제는 가능해졌다.

도시 하수시설은 우리 몸의 혈관과 같다. 혈관이 막히면 적절한 양의 혈액과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듯이 좁고 낡은 하수도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다. 하수도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최적 기능을 발휘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시침수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