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1500조 그림자 금융’ 위기 시작됐다

2024-08-02 13:00:03 게재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온 한국 금융회사들이 상업용 부동산시장 침체 지속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며 해당 기업들의 실명을 보도, 해당 기업들이 발칵 뒤집혔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이지스자산운용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있는 브로드웨이 1551번지 건물에 후순위 대출을 해줬다가 최근 관련 대출자산을 원금의 30%에 못미치는 헐값에 처분했다. 메리츠대체투자운용은 LA 중심부의 고층 건물 가스컴퍼니타워에 변제 순서가 선순위 대출보다 낮은 메자닌(Mezzanine)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건물주가 디폴트 상태에 빠지면서 고전중이다.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도 뉴욕 맨해튼의 고층 사무실 건물인 ‘245 파크애비뉴’ 빌딩의 인수 과정에 메자닌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연초에 해당 대출자산을 원금의 절반 가격에 처분해야 했다.

비은행 금융권 국내외 부동산에 거액 물려 위기 직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체 투자’라는 명목으로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금융회사를 중심으로 2016년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이들은 미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호황장에 올라타겠다며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일부 금융사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금리 대비 2%p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 사례도 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작년 말 기준 57조6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34조8000억원이 북미에 쏠렸다. 문제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비대면 근무 확산 등으로 시장침체가 지속되면서 2분기 기준 미국의 부동산 자산 압류 규모는 205억5000만달러(약 28조4000억원)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상태다. 블룸버그는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대출자산들의 상황이 향후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비은행 금융권은 가뜩이나 국내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로 존립이 위태로운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가 해외 부동산투자에서도 거액의 손실 위험에 직면, 안팎으로 부동산 대출에서 크게 물린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1997년 외환위기의 기폭제가 됐던 종금사들의 동남아-러시아 정크본드 투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당시 종금사들은 아무런 규제없이 ‘고수익 고위험’ 상품인 정크본드에 앞다퉈 투자했다가 1997년 3월 태국 위기를 시작으로 위기가 북상해 한국 러시아 등을 강타하면서 무더기 도산해야 했다. 위기는 종금사 도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대외신인도 전체에 대한 의문으로 확산되면서 외국계의 자금회수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3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이 쓰러지며 실업자가 쏟아지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결국 정부는 IMF에 굴욕적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물론 1997년에 비해 은행이나 그룹들의 재무건전성은 비교할 수 없이 양호하고 외환보유고도 튼실해 이들이 동일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하지만 규제 사각지대는 변함없이 여전하다. 특히 비은행 금융권의 해외부동산 투자 부실화뿐 아니라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사모펀드의 불법적 판매대금 유용이나 해외반출 등에 대해선 통제장치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같이 통제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의 자산규모가 무려 1500조원(2022년 말 기준)에 달한다. 이같은 그림자 금융은 티메프 같은 이커머스뿐 아니라 부동산 PF, 빅테크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다.

특히 전체 그림자 금융의 2/3에 달하는 926조원이 부동산 금융이어서, 부동산 거품 파열시 결정적 취약점을 드러낸다. 내로라하는 굴지의 국내 대기업들이 계열 건설사와 증권사들이 부동산PF에 크게 물리면서 알짜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직원을 명퇴시키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경제, 불확실성 높은 구조전환기 직면

가뜩이나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이 높은 구조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국이 중간재 자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면서 석유화학 철강 등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이차전지에 올인하던 대기업들도 초비상이다. 내수는 가계부채 증가와 고금리에 따른 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AI 쇼크까지 가세, 고용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여야가 말로만 민생을 외칠 때가 아닌 것이다.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