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PET’ 반물질을 사용한 사진기

2024-08-06 13:00:01 게재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슈뢰딩거다. 그가 제시한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뉴턴의 방정식이 거시세계의 운동을 기술한다면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미시세계의 운동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사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올바른 방정식이 아니다.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의 운동을 어느 정도 잘 설명하긴 하지만 정밀한 실험을 해보면 부실한 방정식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유는 전자의 움직임이 고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적이란 말은 빛의 속도에 비해 느리게 움직이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까지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려면 뉴턴역학 대신 상대성이론을 사용한 새로운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해낸 최초의 인물이 바로 천재 물리학자 폴 디랙이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소개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1928년 발표된 디랙 방정식에 따르면 아주 신기한 일이 하나 생긴다. 전자와 달리 양의 전기를 띤 양전자라 불리는 반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물질이 있다면 그와 쌍둥이 같은 반물질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반물질이라니? 그저 수학문제를 풀다가 생겨난 결과일 뿐 실제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아닐까? 놀랍게도 그로부터 4년 후인 1932년 미국의 물리학자 칼 앤더슨에 의해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가 발견된다. 신이 꼭꼭 숨겨 놓았던 반물질을 인간이 찾아낸 것이다.

반물질을 어디 써먹을 수 있을까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반물질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쓸모가 있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를 찾으면 쓸모가 있는 것이고, 그걸 못 찾으면 쓸모가 없어 보일 뿐이다.

반물질이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반물질을 활용할 다양한 응용기술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혁신적인 발견이 바로 양전자 단층촬영(PET) 기술이다. 이 기술은 요즘 CT와 함께 사용되어 PET-CT라는 이름으로 병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PET를 찍는다는 것은 알고 보면 반물질을 체내에 집어넣고 반물질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빛을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플루오린-18과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함한 주사액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플루오린-18은 반감기가 두시간 정도인 불소(F)의 동위원소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를 내고 산소(O)로 바뀐다. 그러니 체내로 유입된 주사액은 우리 몸속 곳곳에 들어가 양전자를 뿜어대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양전자는 붕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전자 입장에서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른 원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어 멀리 못 가고 곧바로 전자를 만나게 된다. 그럼 전자를 만난 양전자는 어떻게 될까? 반물질과 물질은 서로 만나면 ‘뿅’하고 사라진다. 이를 쌍소멸(annihilation)이라 부른다. 따라서 양전자는 전자를 만나 함께 사라진다.

신기한 것은 애초에 전자도 양전자도 질량을 가지고 있었는데 쌍소멸 후 질량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70kg인 사람이 우주를 여행하다 반물질로 만들어진 또 다른 70kg의 반인간을 만나면 둘이 사라지면서 140kg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화학에서나 작동하는 법칙이다.

물론 그렇다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안 지키더라도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지켜야만 한다. 따라서 사라진 질량은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E=mc⁲의 공식을 따라 빛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 공식에 따라 전자와 양전자가 소멸하면서 만들어지는 빛의 에너지는 자그마치 백만전자볼트나 된다. 이 에너지는 두 갈래의 감마선으로 방출된다. 양전자 단층촬영은 바로 이 두 갈래의 감마선 빛을 검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먹성 좋은 암세포 특성 이용한 진단

암세포는 빨리 자라기 위해 정상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영양분을 먹어 치운다. 그러니 종양세포에 더 많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쌓이게 된다. 그러면 다른 곳에 비해 더 많은 양전자가 발생하고 더 많은 감마선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감마선 검출장치인 PET 장비로 보면 종양이 환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피를 따라다니면서 감마선을 내게 되므로 혈류량을 측정할 수 있다.

PET를 찍으면 결국 체내에서 감마선이 발생하므로 자연스레 방사선 피폭을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고에너지 감마선은 투과성이 강해 신체를 쉽게 뚫고 나오기 때문에 감마선이 모두 피폭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 CT 촬영 정도의 피폭이 이루어지지만 진단을 통해 얻어내는 정보의 이득이 더 크므로 PET 진단을 회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