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인구 느는데 돌봄시설은 모두 외면

2024-08-06 13:00:01 게재

재건축단지 공공기여 입주자들이 반대

정치권 '노인 폄훼'가 세대갈등 부추겨

서울에는 공공과 개인을 합쳐 492개의 노인요양시설이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여기에서 노년층 1만6999명이 돌봄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노인인구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노인 1만8099명이 돌봄시설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 시설 입소 희망자도 약 5000명에 달한다. 시 관계자는 “시설 증가가 노인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 인원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인구 가장 많은데 시설갯수는 ‘0’ = 서울시와 자치구는 노인시설 증설을 위해 신규 공동주택 단지, 다시 말해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새로 지어질 때를 활용한다. 빈땅을 찾기 힘든 서울 상황에서 공공으로부터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은 재건축 단지야말로 필수 공공시설을 짓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하지만 복병이 있다. 자식뻘인 젊은 입주예정자들이다. 이들은 노인시설이 자기 단지에 들어오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과거 인구 팽창 시절엔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반드시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출생이 심화돼 어린이집이 아닌 노인 돌봄시설이 필요하다.

한 자치구 데이케어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낮시간대 노인들을 돌봐줄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과 방문요양이 주를 이루는 실버케어센터를 서둘러 늘리려 하지만 주민들은 이를 ‘노치원’으로 깎아 부른다. 노인들이 들락거리면 아파트 이미지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이다. 지역 내 다른 동에 비해 65세 이상 인구수 비율(10%)이 가장 높다. 다른 동들이 평균 5~6% 수준임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 된다. 하지만 여의도동에는 실버케어센터가 단 한곳도 없다. 대단지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목소리가 큰 아파트 및 고층 건물 입주자들이 관련 시설을 기피했고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고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분석했다.

노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도 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복지시설에 종사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자녀들 키우느라 노후 대비를 못했던 어르신들이 자식세대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세대 갈등으로 번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노인 폄훼 현상이 극단적인 정치적 구호와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자녀 세대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이 결국 우리 몫은 우리가 챙길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고, 이 같은 인식이 정치적인 구호와 결합해 극단적 주장을 양산하는 단계로 번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공갈등 분야 관계자들은 노인시설 기피는 여타 공공시설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족관계뿐 아니라 자녀의 직장생활, 나아가 노인들 적기 치료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시설만큼은 집단민원에 쉽게 후퇴해선 안되고 주민 선호시설을 별도로 제시하는 등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한 공공갈등 분야 전문가는 “무엇보다 선례가 중요하다”며 “재건축이 예정된 단지가 수백개인데 모두가 공공시설을 기피하면 앞으로 이 시설들 모두 갈 곳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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