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온라인플랫폼법 더 미루면 안된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가 번지고 있다. 피해자도 전방위로 늘어난다. 피해자 가운데는 일반 소비자는 물론이고 상품을 공급한 중소 판매자들도 많다. 이들은 제때 판매대금을 받지 못해 곤경에 처했다. 대기업끼리의 거래에서는 일부 판매대금 회수가 지연되더라도 상당부분 흡수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판매자가 영세사업자들이어서 더욱 고약하다.
티메프로부터 정산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셀러)와 그 금액을 현재로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판매자들은 상품공급 즉시 판매대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위메프는 판매된 달 말일을 기준으로 두달 후 7일에 100% 정산해주고, 티몬은 거래된 달의 말일로부터 40일 이내에 판매대금을 정산한다고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상품을 납품하고 어음을 받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어음을 받은 중소기업들이 어음할인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처럼 티몬과 위메프에 상품을 공급한 판매자들은 은행의 정산대출을 이용한다. 그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은 실정이다. 그런데 이마저 지금 정산이 안된다니 판매자들은 암담할 것이다.
금융사에 버금가도록 엄격하게 관리 감독해야
모기업인 큐텐은 지난 2월 북미·유럽 기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를 2300억원대에 인수하면서 판매자의 정산대금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산대금은 정확히 말하자면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이 아니다. 고객자금이다. 그런 자금은 어떤 경우에도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런데 정산대금을 동원한 것은 과거 은행들이 고객이 맡긴 신탁계정 자금을 꺼내 고유계정 손실을 메우곤 했던 악습과 비슷하다. 또한 티메프는 결제대행까지 ‘내재화’했다고 한다. 쿠팡을 비롯한 국내외 다른 플랫폼기업들은 결제대행사(PG)를 별도로 분리한 것과 어긋난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뒤늦게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와 공정위, 금융감독원 등이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산대금 관리를 위해 에스크로를 의무화하거나 결제대행사를 분리하도록 명문화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에스크로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없을 때 제3자가 결제 대금을 보관하다가 거래조건이 충족된 뒤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판매자에 대한 정산대금 지급 기일을 최대한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기업들이 어음기간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방안이든 조속히 확정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판매정산 대금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인 것처럼 함부로 써먹는 일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거래규모는 2000년 6600억원에서 지난해 227조원대로 340배 정도 급증했다.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전통적인 금융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금융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사에 버금가는 정도로 엄격하게 감독해야 한다. 이를테면 결제대행사에 대해 금융당국이 언제든 검사하고 경영개선 권고나 명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당장 판매대금 정산을 받지 못하는 영세기업들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이들 판매자에게 5600억원가량의 지원계획을 내놓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지원을 늘리는 데 주저하면 안된다. 수출기업들에게 수출금융을 아낌없이 해주듯이 이번에 피해를 당한 영세사업자들에게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자율’ 강조할 게 아니라 최소한의 질서 위해서도 법 제정 필요
나아가서 이번 기회에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규제법을 제정할 필요가 커졌다. 윤석열정부 들어 온라인플랫폼에 대해 ‘자율’을 강조하고 규제법 제정은 기피해왔다. 그러나 이제 ‘자율’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최소한의 질서를 잡기 위한 법제정에 나서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재작년 카카오 불통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온라인플랫폼 법제정 요구가 비등했지만 곧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이번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법제정이 안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1차적으로 크지만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꾸 입맛에 맞는 법안만 밀어붙이지 말고 지금 만사를 제치고 온라인플랫폼법 제정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