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높은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 대책 마련 시급
단독사고 치사율, 전체 차종대비 4.3배 … 단속강화·속도제한 노력 ‘민망’
집단행동 등 처벌 강화 목소리 … 안전모 미착용 등 안전 불감증도 한몫
#1. 지난달 8일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여고생 2명이 면허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다 산책하던 부부를 덮쳐 60대 여성이 사망했다. 경찰은 여고생들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2. 지난달 20일에는 광주광역시 남구 도로에서 오전 5시 35분쯤 술을 마신 채 전동킥보드를 타던 A씨와 B씨가 버스에 치여 숨졌다. 휴가를 나온 군인 A씨와 그의 지인 B씨는 전동킥보드 한 대에 두 명이 함께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동킥보드 탑승 시 헬멧 등 안전 장비는 착용하지 않았다.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장치(PM·Personal Mobility)의 단독사고 치사율이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PM으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2389건이다. 이로 인한 사망자수는 24명, 부상자는 2622명이었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2386건의 사고로 사망 26명, 부상 2684명보다 소폭 감소한 수치다.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 1.3%보다 4.3배 = 문제는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치사율이 5.6%로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 1.3%보다 4.3배나 높다.
PM 사고 유형별로는 차대 사람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46%를 차지했다. 전체 차종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18.7%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PM 운전자가 통행방법을 위반하고 보도로 통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차종에 비해 차대 사람 사고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PM은 시속 20~35㎞까지도 낼 수 있어 어린이는 물론 시속 4㎞ 수준으로 걷는 성인에겐 위협적인 존재다. PM 사고 사망자의 경우 공작물 충돌이나 전도, 도로 이탈 등 단독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비율이 62.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PM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 줄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PM은 원동기장치 자전거, 2종 소형, 1·2종 보통 등의 운전면허 소지자만 운행할 수 있다.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자전거 도로 또는 차도 우측 가장자리를 이용해야 한다. 또 자동차와 음주 후에는 이용해서는 안 되고, 음주운전 시 단속과 처벌을 받는다. 전동킥보드와 전동이륜차 승차 정원은 1명이며, 2인 이상 함께 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전동킥보드는 차체에 비해 바퀴가 작아 도로 파임, 높낮이 차이 등 작은 충격에도 넘어지는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PM의 속도를 낮춰 운행하고, 빗길이나 눈길에는 운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PM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어 안전 수칙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모든 운전자가 PM도 ‘차’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안전한 교통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정부, 시속 20km 제한 시범사업 = 사정이 이렇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 전동킥보드 대여업체는 PM 사고 예방과 인명피해 감소를 위해 이달부터 오는 12월 말까지 서울,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인형 이동장치 최고속도를 시속 20km로 제한하는 시범운영 사업을 실시한다. 이번 사업에는 총 10개 대여업체가 참여한다.
정부는 운행속도 하향 시 정지거리는 26%, 충격량은 36% 감소한다는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따라 이번 조치가 사고와 인명피해 감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조례 개정 등을 통해 전동 킥보드 사고 예방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개인형 이동장치의 최고 속도를 20㎞로 낮춰 시행하고 있다. 올들어 6월까지 대구에서 발생한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사고는 총 51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71건)보다 20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시는 최고 속도를 제한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고 확률이 내려간 것으로 판단한다.
인천시도 관내 4개 전동 킥보드 운영업체와 협의해 지난 2월부터 최고 속도를 20㎞로 하향 조정했다. 또 미성년자들의 무면허 운행과 명의도용을 막기 위해 16세 미만 이용자에 대한 인증도 의무화했다.
세종시도 지난 3월부터 관련 업체와 논의해 최고 속도를 20㎞로 낮추고, 학교 정문 등 사고 위험이 큰 구역에 대해 개인형 이동장치 주차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울산시는 지난해 10월 전동 킥보드 이용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이용자 안전의식 제자리 걸음 = PM관련 사고가 잇따른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의 안전 불감증을 꼽기도 한다. 전동킥보드의 경우,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2021년 5월 시행된 이후 3년이 지났다. 하지만 대다수 이용자가 착용 의무를 모르고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된 도로교통법은 안전모 등 인명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전동 킥보드를 타면 2만원, 2명 이상이 같이 타면 4만원의 범칙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또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다 적발되면 부모나 보호자에게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경찰도 법개정 이후 안전모 미착용, 무면허 탑승 등을 꾸준히 단속하고 있다. 여기에 PM 이용자들의 안전의식도 제자리걸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운전자 교통법규 인식에 관한 연구(2023)’에 따르면 PM 이용 경험이 있는 운전자 702명 중 좌회전 방법을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63%에 달했다.
한 교통 경찰관은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나 단속에 적발된 운전자 태반이 여전히 안전모 착용이 의무인 줄 모른다”면서 “청소년 시기부터 학교 등에서 안전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M 폭주족 등장에 법령 재정비 목소리 = 한편 지난 4일 ‘따릉이 폭주 연맹(따폭연)’의 따릉이(서울시의 무인 공공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이용한 ‘폭주 집회’ 예고에 경찰 수백명이 대거 투입된 사건을 계기로, PM 관련 법령을 엄격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따폭연이 인도·차도를 오가며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수단은 주로 따릉이와 공유 전동 킥보드다. 따폭연이 SNS에 올린 영상을 보면, 따릉이와 전동킥보드 등을 타고 보행자 사이를 지나가며 위협하거나 단속을 위해 따라오는 경찰을 조롱하기도 한다.
오토바이 폭주족은 집단행동을 할 경우 도로교통법상 공동 위험행위의 금지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는 집단행동을 제재할 처벌 규정이 없다. 게다가 PM 대여사업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정부가 대여업체를 관리·감독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PM 이용 증가로 안전을 위한 다양한 규제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면서 “규칙을 어기면 안전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