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여야정 상설 협의체’ 구성을 기대한다
미국발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가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고용 쇼크와 인공지능(AI) 주가 거품론이 R의 공포로 번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주식시장이 폭락과 폭등을 오가는 널뛰기 장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주식시장이 이처럼 불안정성을 보이는 것은 예상보다 나빠진 고용지표로 인한 미국의 경기위축 전망에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 설계 오류, 인텔의 2분기 실적 쇼크 등으로 발생한 기술주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여기에 중동지역 긴장 고조가 가미됐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최고지도자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되자 보복을 선언했다. 이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돌입해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초대형 먹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발 R의 공포에 한국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
미국의 경기 급랭과 중동지역 위기가 맞물리면 글로벌 경제는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에 이어 미국마저 경기침체를 겪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수출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여기에다 중동전쟁 발발로 유가까지 폭등할 경우 대외변수에 취약한 한국경제의 치명상이 예상된다.
한국경제는 인구감소와 이상기후 등 근원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극심한 내수경기 부진과 고환율, 늘어나는 가계부채, 수도권 집값 상승, 막대한 세수 펑크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악재에 대응할 정책수단이 마땅치 않다.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카드는 치솟는 수도권 집값과 늘고 있는 가계 빚에 발목이 잡혀 있고, 재정살포를 통한 내수 살리기도 2년 연속 세수펑크 예상으로 쉽지가 않다.
최근에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내수부진이 심화하고 있어 가뜩이나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 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금리역전 현상이 2022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어 자칫 외국인 투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더욱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다만 높은 실업률로 인한 미국의 투자심리 급랭과 글로벌 증시 특히 아시아 증시의 폭락이 다소 과도했다는 평가가 유일한 위안거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경기낙관으로 연준이 적절한 통화정책 전환(피벗) 시점을 놓치기는 했지만 미국 경제가 시장의 우려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예컨대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를 촉발할 만한 뚜렷한 충격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7월 고용지표 둔화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8월에는 일자리지표가 회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경제가 심각한 불확실성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와 중동정세 악화로 글로벌 통상환경이 무척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진영논리와 갈등구조에 매몰돼 서로 싸우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통합과 미래를 위한 과제는 실종되고 오로지 거대 야당의 단독입법과 탄핵,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삶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각자도생에 나서 수도권 부동산 청약에 매달리는 등 일확천금을 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정부가 금명간 발표할 수도권 집값상승을 막기 위한 부동산 종합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이 야기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여야 무한정쟁에서 벗어나 민생현안 논의에 매진하길
이런 와중에 여야가 7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민생 정책을 논의할 ‘여야정 상설 협의체’ 구성에 뜻을 모은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전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자 더불어민주당의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이에 화답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다. 여야 정책위의장도 이날 첫 상견례를 하면서 취약계층 전기료 감면법 등 양당 간 견해차가 크지 않은 민생법안을 신속히 처리하자는 데 합의했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위해 8일 실무 회동을 갖는다. 이번 협의체 구성을 계기로 여야가 지금까지의 무한정쟁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민생현안 논의에 매진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