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민원에 갈 곳 잃은 공공시설 ④ | 공공보행로
외부인 출입 싫어…“단지 밖으로 빼라”
강남구 한강변 단지 ‘용적률 사유화’
한강 이용 혜택 누리고 공익은 외면
◆보행로 옮기면 전체 설계 뒤집어져 = 해당 단지는 재건축 이후 한층 고급단지로 변모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외부와 단절을 시도하는 단지의 폐쇄성이 어느 곳보다 유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행로를 단지 밖으로 빼달라는 요구도 이의 연장선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시에 따르면 보행로 이동은 주민들 주장과 달리 공익성에 위배되는 행위다. 해당 단지는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대대적인 용도지역 변경과 종상향 혜택을 받았다. 층수를 대폭 높여 재건축 수익성도 크게 향상됐다. 한강변 전체 경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지라는 이유로 서울시로부터 특화된 설계를 요청받았고 반대급부로 3종 299.72%, 준주거 436.15% 등 상향용적률도 최대치까지 뽑아냈다.
문제는 약속 뒤집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행로의 이전은 해당 구역 설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해당 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바닥 을 기존보다 3m 이상 높이기로 했다. 주변 도로에선 단지 1층이 보이지 않아 도심에 우뚝 선 ‘성’처럼 보이게 된다. 바닥 높이가 올라간 배경에도 단지를 배려한 결정이 담겨 있다. 한강을 건너는 보행교와 연결하기 위해 단지 옆 올림픽도로 상부를 덮은 데크형 공원을 만들기로 했고 이와 높이를 맞추기 위해 단지 전체 바닥을 올리기로 했다. 주민 입장에선 외부와 차별된 ‘성’처럼 보이는 효과에 더해 데크공원과 높이 차이까지 없어지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단지 안에 만들기로 한 공공 보행로를 단지 밖으로 빼게 되면 이 같은 전제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다. 주민들 주장대로라면 보행로는 1층보다 낮은 3m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이럴 경우 데크공원과 보행로 사이에 높이 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큰 예산을 들여 덮개공원을 만들 이유가 없어진다.
주민들은 보행로를 단지 밖으로 빼내기 위해 당초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한강 보행교마저 없던 일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려다 랜드마크급 시설인 한강 보행교 계획 철회 등 전체 설계가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남구는 주민 주장을 반영한 새로운 설계안을 협의 중이며 이를 두고 서울시와 단지 사이에 상당한 진통이 예고돼 있다.
시 관계자는 “공공보행통로는 용적률 인센티브 적용 항목에 해당하며 주변과 가로망 연계 등 인프라 확보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라며 “재건축으로 단지가 확장되면 주변 교통과 보행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인근지역 전체 보행동선, 대중교통 접근성 등 전반적 도시계획을 고려한 방안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