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샴의 법칙’이 말해주는 것들

2024-08-14 13:00:02 게재

8월 5일부터 8일까지 4거래일간 미국 증시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은 금융시장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 2000년 미국의 닷컴버블과 2008년 미국 월가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경제위기, 그리고 코로나19 때와 같은 위기 요인이 없이도 증시가 대폭락하는 ‘블랙먼데이’를 연출했다.

급격한 엔캐리 청산이 불러온 글로벌 증시 변동성

폭락의 이유를 따지자면 몇가지를 들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테크 주가 거품론, 미국 고용지표 둔화에 따른 경기침체 공포, 급격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미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 이스라엘-이란 충돌에 따른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고조 등이다. 폭락 사태가 진정된 지금의 시점에서 되짚어보면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을 주도한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유동성을 단기간에 ‘과격하게’ 줄여버린 엔캐리 청산으로 지목된다. 이와 함께 경제 펀더멘털 요인인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기저적 배경으로 꼽힌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인 엔화를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 즉 주식 채권 통화와 원자재 부동산 가상화폐 등에 투자해 수익을 추구하는 거래인데, 2016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를 기점으로 미국 월가를 비롯해 전세계 헤지펀드와 기관투자가 심지어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도 즐겨 사용한 수법이다. 거래규모가 20조달러(약 2경75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의 엔캐리 청산은 미국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를 불러왔던 1998년과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때에 이어 엔저 30년간에 걸쳐 세번째로 일어난 것으로 금융시장에서는 아웃라이어(outlier)이지만 파급이 폭발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행이 급히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며 수습에 나서 초대형 폭풍은 일단 지나간 듯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를 인용해 약 50% 이상 청산됐을 것으로 보고 있고, 골드만삭스 90%, JP 모건체이스 70%, 스위스 UBS 40% 정도로 보는 등 예측이 들쭉날쭉해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계속 유발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엔캐리발 폭락장세는 일부 진정됐지만 시장의 불안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8월 6일 ‘턴어라운드의 화요일'(Turnaround Tuesday)이 나타났지만 조정이 끝났다는 분위기보다는 경기침체 논란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시장을 지배했다. 엔캐리 청산에 이어 이른바 '샴(Sahm)의 법칙’이 불러온 패닉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샴의 법칙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클라우디아 샴이 2019년 연준의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삼자고 제안한 것으로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지난 12개월 최저치보다 0.5%p 높아지면 이를 경기침체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1950년 이후 있었던 11번의 경기침체 중 1959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맞았을 정도로 ‘법칙(rule)’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렵지만 높은 통계적 유효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5~7월 실업률 평균은 4.13%로 지난해 3개월 평균치 저점 3.6%에 비해 0.53%p 높다.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샴의 법칙 임계값(0.5%p)이 깨졌을 때 실업률은 항상 훨씬 더 높아졌다. 통화 정책의 궤적에 대한 불확실성은 아마도 수개월 동안 높을 것이다. 주식 채권 시장에서 더 큰 변동성에 대비하라”고 거들었다.

샴은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칼럼에서 “내 이름이 붙은 법칙이 경기침체를 말하고 있지만 아직 침체에 빠지지는 않았다”고 진단했다. 경기침체 때 노동수요 감소로 인한 실업률 상승은 샴의 법칙이 역사적으로 잘 통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이민인구 증가 등 노동공급의 증가로 인한 실업률 상승은 노동수요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공급이 강해서 0.5%p 한계를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미 증시와 호경기 이후에 올 경기침체 대비할 때

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샴의 법칙'은 여전히 타당하다. 지난 1년 동안의 실업률 상승은 이제 정상을 지나 불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준이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재닛 옐런의 재무부는 넉넉한 재무부일반계정(TGA)을 통해 시장의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파월의 연준은 금리인하를 통해 시장의 완화적 분위기를 조성하겠지만, 미국 증시 상승과 경제의 호시절이 끝없이 계속될 수는 없다. 지금부터 다가오는 경기침체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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