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음식값 왜 오르기만 하고 내리진 않나

2024-08-19 13:00:01 게재

미국 패스트푸드업계에 할인판매 경쟁이 뜨겁다. 5월말 버거킹이 5달러짜리 세트메뉴로 가격인하 방아쇠를 당기자 웬디스, 맥도날드, 타코벨이 동참했다. 맥도날드는 당초 7월로 정한 기획상품 판매기간을 8월말까지 연장했다.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을 실감한 소비자들은 매장 방문을 늘리며 호응했다.

버거 체인의 할인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고물가에 지쳐 지갑을 닫자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소비자들은 평소보다 넉넉한 현금을 손에 쥐었다. 코로나지원금 등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과 여행·외식이 힘든 봉쇄 조치로 지출을 줄이는 ‘강제 저축’ 효과가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자 억눌렸던 수요가 분출했고,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인상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태라서 오른 버거값에도 고객 주문은 코로나 이전 수준을 유지하거나 웃돌았다.

맥도날드가 5달러 세트메뉴 파는 이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최근 몇 달 새 수요가 냉각됐다. 소비자들은 코로나19 기간 비축한 돈을 소진했다. 임금 상승세도 둔화됐다. 금리마저 높아 신용구매를 하려면 현찰거래보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이는 저소득 가구에서 두드러졌다. 여윳돈이 없자 가격에 민감해지고, 비필수품 구매를 자제했다.

물가가 요동치자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에 기대어 제품 가격 인상폭을 생산비용 증가분보다 높게 책정하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 탐욕+인플레이션)’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물가상승 주범으로 소비재 기업을 겨냥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6월 기준 식료품 가격은 5년 전(2019년) 대비 26.2% 상승했고, 외식비는 같은 기간 27.2% 급등했다. 최근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로 진정됐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물가에 민감하다.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이민, 기후변화, 건강관리 등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한국은 어떤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 추세라지만 음식 값, 외식물가 고공 행진은 여전하다. 재료 값과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올렸다 하면 몇 천원씩이다. 게다가 일단 올라간 음식 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식품 가격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인상은 해도 내리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초복 중복이 낀 지난달, 서울 지역 삼계탕 값이 1만7000원을 돌파했다(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포털 참가격). 평균이 이렇지 2만원 받는 음식점도 있다. 냉면 평균 가격이 1만2000원에 육박했고, 삼겹살은 200g 1인분에 2만원을 넘어섰다. 김밥도 평균은 3462원이지만, 한 줄에 6000원 받는 곳도 있다. 소비자들은 만원 한 장으로 먹을 게 없다고 불만이다. 음식점 주인들은 재료비, 인건비, 전기료, 수도요금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외식비가 급등하자 회식이 줄며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가 부진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줄었다며 울상이다.

국제 밀 시세 4년래 최저…밀가루·음식값은?

국제 밀 가격이 4년 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러시아의 감산 리스크가 사라진데다 미국 캐나다 등 밀 생산국의 풍작이 예상돼서다. 시카고상품거래소 9월 밀 선물가격은 부셸당 5.4달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대비 60% 하락했다.

국제 밀 시장이 공급 부족에서 공급 과잉으로 바뀌었다. 국내 밀가루 가격과 밀가루가 주재료인 음식 값도 내려야 옳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식품업체 대표들을 만나 제품 가격 인하를 당부했다. 식품업체와 외식업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미국 뉴욕 못지않게 서울도 외식과 식료품 물가가 비싸다.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고객을 놓치기보다 최소한으로 올리며 고객을 붙잡는 것 중 어느 전략이 나은가. 탐욕에 의한 무리한 가격인상보다 원가에 입각한 합리적 가격인상 및 인하로 고객에게 신뢰받는 경영이 지속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는 세금’이다. 서울 지하철역에서 성업하던 ‘1000원 빵집’이 6월을 전후해 값을 100~300원씩 올리거나 문을 닫았다. 소비자들은 458개 물가조사 품목의 평균 상승률보다 자신이 주로 구매하는 품목의 물가를 그전과 비교하며 소비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와 기업은 이런 소비행태를 고려해 물가정책을 펴고 가격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