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 덕본 철광석, 호황시대 끝났나
지난 25년 가격 10배, 거래량 3배 증가 … 블룸버그 “중국경제 둔화, 생산비 높은 기업 위기”
석유와 구리, 대두 등 많은 원자재가 지난 25년간 중국 경제호황의 혜택을 누렸지만, 그중 단연 으뜸은 철광석이었다. 철광석은 놀라운 호황을 구가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올해 초까지 철광석 가격은 10배 가까이 급등했고 거래량은 3배로 증가했다. 다른 어떤 주요 원자재도 철광석을 따르지 못했다.
이 덕분에 호주 광산기업들은 억만장자가 됐고, 월가 금융권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마지막 남은 미개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철광석 호황은 끝났다는 진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9일 “21세기 최고의 원자재였던 철광석 호황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며 “중국이 호황을 이끌었지만, 이를 깨뜨리는 것도 중국”이라고 전했다.
용광로에서 강철로 변하는 붉은색의 광물 가격은 현재 톤당 100달러 이하로 하락했다. 이는 2021년 사상최고치인 톤당 220달러에서 55% 하락한 수치다. 중국의 철강 수요가 정점에 도달함에 따라 향후 전망은 암울해 보인다.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는 건 어렵지만, 2020년에서 올해 초 사이에 중국의 철강 수요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경제모델이 주택 건설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철광석 수요 정점 도달
중국은 과거 경기침체기 빚을 내서 건설에 열중하면서 철광석·철강산업 등 경제를 구해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주 세계 최대 철강업체 중 하나인 중국바오우강철그룹의 후왕밍 회장은 철강부문에 혹독한 겨울이 닥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길고, 더 춥고,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중국은 전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다른 국가들이 중국을 대신해 철강 수요의 견인차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장 확실한 후보는 인도다. 하지만 전세계 철광석 시장에게는 불행하게도, 인도는 자국내 막대한 철광석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철광석 수입 없이도 철강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철강 수요 정점이 아직은 철광석 시장에 재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철강 소비는 급격히 감소하기보다는 향후 수년간 현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중국이 과거만큼 많은 주택을 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빔이나 봉 등 이른바 ‘장대강(long steel)’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많은 철강이 필요하다. 바로 전기차와 냉장고 등에 사용되는 ‘평강(flat steel)’이다.
결정적인 지점은 중국의 경기 둔화가 호주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세대의 대형 저비용 광산이 생산을 시작하는 때와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이 엇갈린 상황은 올해 상반기 이미 공급과잉 상태인 철광석 시장이 내년은 물론 길게는 2028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다. 호주 맥쿼리은행은 “현재의 공급과잉 상황은 ‘역대 최악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중기적으로 시장의 수급 균형을 다시 맞추려면 철광석 가격이 하락해야 한다. 이는 고비용 광산기업들을 위기에 몰아넣게 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낮아져야 할까. 신규 광산이 제때 가동되는지 여부와 중국 부동산 경기의 회복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계획된 생산량이 시장에 풀린다면 해상운송 철광석 시장의 약 12.5%에 해당하는 2억톤의 철광석이 수요를 찾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엄청난 양이다. 2015년과 2016년 비슷한 수준의 공급 과잉이 발생했을 때 철광석 가격은 현재의 절반 수준인 톤당 50달러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현재시점에서 시장은 붕괴되지 않았다. 최근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철광석 가격은 톤당 100달러 가까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1980~2000년 평균가격인 톤당 12.5달러보다 700% 높은 수준이다. 지난 수년 동안 상승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2000년의 가격수준에 근접하려면 엄청난 폭락이 일어나야 한다.
현재 가격으로도 상위 채굴기업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영국과 호주 자본으로 구성된 글로벌 광산업체 ‘리오 틴토(Rio Tinto)’는 세계 최대 철광석 채굴업체 중 하나다. 이 기업이 서호주 필바라 지역에서 톤당 약 21달러의 비용으로 철광석을 채굴한다면, 현재의 낮은 가격에서도 투자한 자본의 40% 이상, 많게는 50%까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가격이 톤당 50달러까지 떨어지면 리오 틴토의 운명은 다른 대형 생산업체 ‘발레’, ‘BHP그룹’, ‘포테스큐’, ‘앵글로 아메리칸’ 등과 함께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는 결국 2020년대 후반 인수합병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아프리카 기니의 ‘시만두 광산’과 호주의 ‘온슬로우 광산’은 생산비용이 낮기 때문에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여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2028년까지 두 신규 광산은 현재 시장 규모의 약 10%에 해당하는 약 1억5000만톤을 해상운송 시장에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주요 채굴업체들은 다른 광산도 확장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누가 생산량을 줄이게 될까. 브라질과 인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 카자흐스탄의 2~3선 채굴업체가 관심대상이다. 이들 기업의 생산비용은 톤당 50달러에서 100달러에 이른다.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면 이들이 시장에서 밀려나 재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 중국 채굴기업들도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과잉이 커질수록 가격은 더 낮아진다.
거대기업들은 ‘3선 채굴업체의 원가는 톤당 80~100달러에 가깝기 때문에 철광석 가격이 톤당 90달러 아래로 하락하면 일부 고비용 생산업체가 도산,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시장의 균형이 재조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공급 과잉이 심각해지면 톤당 60~80달러의 원가를 가진 2선 채굴업체들이 채굴을 중단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톤당 50달러에 근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있다.
공급과잉 심해지면 톤당 50달러도 가능
하지만 철광석이 톤당 15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던 2000년 이전의 초저가 시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시 철광석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변방이었다.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표현일 정도로 원시적인 시장이었다.
1960년부터 21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철광석 가격은 치열한 거래 속에서 매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채굴업체들과 일본 철강업체들 간 비밀협상을 통해 1년에 한 번 결정됐다. 한 철강업체와 한 채굴기업이 가격협상에 합의할 때까지 모두가 기다렸다. 두 기업이 가격에 합의하면 업계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와 동일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거래하는 준카르텔 방식이었다. 2000년대 초반이 돼서야 철광석 일일 현물시장이 등장했다. 중국 경제 호황기였던 2010년이 돼서야 연간 가격협상 시스템은 무너졌고 일일 가격에 연동되는 장기계약시스템이 지배적인 체제로 들어섰다.
블룸버그는 “1960년부터 2000년까지의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채굴기업들은 톤당 200달러가 넘는 호황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년간 톤당 평균 가격인 90달러도 위태롭다. 물론 예상치 못한 사건이 시장을 부양할 수 있다. 2015년과 2019년 브라질 마리아나댐과 브루마디뉴댐이 붕괴되면서 갑자기 철광석 공급량이 감소해 가격이 상승했다. 블룸버그는 “그같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한 철광석 호황 시대는 끝났다”고 전했다.
철광석 채굴기업들을 보면 그런 징후를 잘 알 수 있다.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 달리 행동은 철광석 시장의 쇠퇴를 암시하고 있다. 세계 최고 철광석 광산업체 중 하나인 호주 BHP는 올해 라이벌기업 앵글로 아메리칸을 500억달러에 인수하려고 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재 앵글로 아메리칸의 철광석 광산을 둘러싼 이견으로 지난 5월 협상이 결렬됐다. BHP는 생산비용이 높은 남아공 철광석 광산을 제외하길 원했지만 앵글로가 이를 거부하면서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