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기피 갈등, 방치하면 안돼”

2024-08-22 13:00:02 게재

서울시, 민관합동기구 구성 검토키로

시·자치구·정비업계 전문가 한 자리에

기부채납 완화 등 갈등요인 사전 차단

서울시가 민관합동기구 운영 등 기부채납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공공시설 기피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반대가 계속되면 사회의 정상적 유지를 위한 기초 인프라 확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 사례가 노인돌봄 시설이다. 최근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노인 관련 시설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공공갈등 분야 한 전문가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어린이집보다 노인 관련 시설이 많이 필요해졌는데 주민 반대로 시설을 계속 확보하지 못할 경우 돌봄 공백 등 또다른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노인 시설 부족은 가족간 불화와 저출생 문제 확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프거나 고립된 부모를 모실 곳이 없어 자녀들이 시간을 뺏길 경우 업무는 물론 가족관계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노부모가 치매 등 중한 질병을 앓고 있으면 문제는 더 커진다. 자녀 중 한명이 고스란히 부모 곁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공공시설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한 민관합동기구 구성에 나섰다. 기부채납에 의한 빗물저장 시설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강남구 한 재건축 단지가 2022년 홍수 당시 침수된 모습. 내일신문 자료사진

필수안전시설을 외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남구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빗물저류조를 공공기여 시설로 짓기로 했는데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미관, 아파트 값 하락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문제는 이 아파트가 해마다 물난리가 나면 1층 전체가 잠기는 등 상습 침수 지대에 있는 시설이란 점이다. 도시계획 분야 한 관계자는 “홍수 피해가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에 꼭 필요한 빗물 분산 저장 시설까지 반대하면 해당 단지는 물론 주변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제도개선, 갈등 키워 = 지지부진한 제도개선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저출생이 문제가 되지 않을 때는 새 아파트를 지을 때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짓는 것을 의무로 정했다. 저출생이 일반화된 지금은 거꾸로 고령화에 대비해 노인 관련 시설을 필수로 해야 한다. 하지만 법·제도는 변화된 사회 현상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동구 모 재건축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학교 신설 문제는 학령인구 부족 시대를 반영하지 못해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을 초래했다.

시가 구상하는 민관합동기구 운영도 난관이 없지 않다. 주민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자치구,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율에 나서야 하는 전문가의 입장 등 획기적인 갈등 해소 대책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공갈등 전문가들은 갈등관리기본법 등 법·제도적 규정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공공시설을 기피시설이 아닌 필수시설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도시계획에 따라 시설 확보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기여(기부채납)의 구조적 개선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적률 혜택을 받은 만큼 공공기여를 내놔야 하지만 무리한 의무규정은 주민 반발을 낳고 이는 재건축 사업 전체를 지연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결국 주택공급에 차질을 빚고 집값 안정화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용도지역 상향에 따른 공공기여가 과도하지 않도록 기여비율 축소, 의무제공 시설 경감 등 근본적 갈등요인 제거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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