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수처 닦달만 해서 되겠나
22일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취임한 지 석달이 됐다. 2기 공수처 수장을 맡은 오 처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건 “수사를 잘하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개입 의혹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키고 있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 수사의 경우 1년이 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는 올 1월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 관련자들을 잇달아 소환조사하며 속도를 내는 듯 했지만 대통령실 조사를 앞두고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의혹 사건도 공수처가 수사를 시작한 지 한참이 됐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출범 후 끊이지 않는 수사력 논란
사실 공수처 출범 이후 부실수사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공수처가 지금까지 직접 수사해 기소한 사건 가운데 1심 이상 법원의 판단을 받은 건 3건이다. 이 가운데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났다. 전직 부산지검 검사 수사기록 위조 의혹 사건 역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올 1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공수처가 그동안 청구한 5건의 구속영장은 모두 법원에서 기각돼 ‘5전 5패’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공수처(公搜處)가 아닌 공수처(空手處)’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렇다고 공수처만 탓할 일은 아니다. 당초 문재인정부에서 공수처 설립을 추진할 당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사 50명, 수사관 70명을 적정 인원으로 권고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전체 수사 인력 규모가 파견검사까지 합쳐 120여명에 달했던 것을 고려한 숫자였다. 이 정도 규모는 돼야 굵직한 권력비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검사들로 구성된 법무부 태스크포스(TF)와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공수처 정원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검찰의 견제와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반대로 규모가 쪼그라든 것이다. 공수처는 이 정원마저 제대로 채운 적이 없다. 적은 인원으로 격무에 시달리는데 신분은 불안정해 이탈이 잦은 탓이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재신임을 받아야 하고 연장은 3번까지만 가능하다. 정년보장 없이 최장 12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는 셈이다.
정년이 보장되고 7년마다 적격심사만 받으면 되는 검찰과 대비된다.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 수사4부의 경우 소속 검사가 6명에 불과하다. 수사4부에선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도 수사 중인데 최근 ‘세관 마약 수사외압 의혹’ 사건까지 배당됐다.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공수처의 수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은 인력문제 말고도 더 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3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는데 수사대상 범죄는 직무유기, 횡령·배임 등 직무관련 범죄로 국한된다. 고위공직자 비리가 대부분 민간비리와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는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이다.
공수처는 또 고위공직자 가운데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재판에 넘길 수 있다. 기소 대상이 아닌 고위공직자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이첩할 수 있을 뿐이다. 감사원 표적감사 혐의를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여러차례 공수처 소환 요구에 불응했던 것은 기소권 없는 수사의 한계를 보여준다.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법개정해야
공수처가 ‘권력형 비리,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결국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을 바꿔 수사 대상과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이 몇 차례 추진됐으나 우선 순위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야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반대하며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도부가 공수처를 찾아가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진정 공수처가 신속하게 수사하길 바란다면 닦달만 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역량과 권한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도 공수처 강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여야가 법 개정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