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윤심’ 극복이냐 굴복이냐 갈림길 섰다

2024-08-29 13:00:03 게재

윤-한 갈등 극대화 … 특검법·김경수·의대정원 놓고 잇따라 충돌

당정 협력 어려워진 듯 … 한, 현재권력과의 관계 재설정 내몰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갈림길에 선 모습이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 대표에 올랐지만, 취임 후 당정 갈등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장면이 되풀이되면서 차기를 노리는 한 대표로서도 현재권력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내몰렸다는 관측이다.

발언하는 한동훈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진노한 윤 대통령 = 29일 대통령실과 한 대표는 ‘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을 놓고 정면충돌을 이어갔다.

한 대표가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2026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자”고 제안하자, 대통령실은 28일 화력을 총동원해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의료개혁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은 변함이 없다” “(한 대표 제안은) 대안이라기보다는 의사 수 증원을 하지 말자는 얘기 같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 굴복하면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증원을) 유예하면 입시 현장에서 혼란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진노’가 반영된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비대위 시절부터 한 대표와 거리를 뒀다. 한 비대위원장이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을 겨냥하자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 63%란 압도적 지지를 얻어 한동훈체제가 출범했지만,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이하 제3자 특검법) △김경수 복권 재검토를 묵살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가 고심 끝에 내놓은 ‘의대 정원 증원 유예’까지 강하게 반대하면서 윤-한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동훈 정치’ 고사 위기 = 차기를 노리는 한 대표로선 파탄 지경에 이른 현재권력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현재권력에게 일단 굴복하는 모습을 취한 뒤 2인자로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거나, 현재권력에 대비되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취임 초부터 ‘국민 눈높이’를 좇기 위해서는 ‘제3자 특검법’ 추진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다만 당내 친한의원이 20~30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곧바로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하면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당내 공론화를 핑계로 시간을 벌면서 신중을 기해왔다. 한 대표가 취임 뒤 한 달이 넘도록 신중한 행보를 고수하자, 야권으로부터 “바지 사장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칫 ‘한동훈 정치’가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특검법’에 이어 ‘의대 정원 증원 유예’까지 내친 상황에서, 한 대표도 과감한 대응을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호통에 일단 고개를 숙이면서 ‘때’를 기다릴 수 있다. 2014년 비박(박근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개헌 불가피론 △국회법 개정 △공천 살생부 논란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을 겨냥했다가, 박 대통령과 친박이 분노를 터트리면 30시간 이내에 고개를 숙이면서 ‘김무성 30시간 법칙’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한때 차기주자 경쟁에서 선두권을 달리던 김 대표는 대선에 출마도 못했다.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에 속도를 내면서 윤 대통령과의 본격적인 차별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제3자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만큼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윤 대통령의 반대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여권 인사는 28일 “한 대표는 비대위 시절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고 그 덕분에 전당대회에서 63%란 압도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표 당선 이후에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주저하면서 ‘한동훈 정치’가 고사될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국민이 지지하는 특검법 추진을 통해 ‘한동훈 정치는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 대표의 차별화 시도는 정치적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권력이다. 친윤은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 대표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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