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되고 있다더니…가계 여윳돈 8분기 연속 줄었다

2024-09-02 13:00:18 게재

여윳돈 줄자 가계소비도 감소 … 최근 내수부진과 직결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 16개월 감소 … 역대 최장 기록

정부정책 부자감세·기업지원 ‘올인’ … “정책 전환 시급”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정부 진단이 실제 국민생활과는 거리가 멀다는 ‘세평’이 통계지표로 확인됐다. 경기회복은 수출대기업에나 통할 말이었다.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가계 흑자액이 최근 8개 분기 연속 줄었다. 가계 흑자액은 쉽게 말하면 ‘여웃돈’이다. 가정의 소득에서 지출을 뺀 돈이다. 이 돈으로 빚을 갚기도 하고 자산 구입 등 재테크를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회복됐다고 하지만 대기업 얘기일 뿐, 실제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2년째 팍팍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가계흑자액 감소는 최근의 내수 부진과도 직결된다. 최근 내수 부진의 이면에는 고물가·고금리, 실질소득 감소 등으로 쪼그라든 가계 살림살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부 경제정책 기조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수출과 대기업이 잘되어야 국민들도 잘 산다’는 낙수효과를 믿고 있는 윤석열정부는 여전히 ‘부자감세·기업지원 정책’에 올인하고 있어서다.

추석 앞두고 먹거리 물가 ‘들썩’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가계 여윳돈이 8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추석을 앞두고 식품·외식업체에서 가격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쪼그라드는 가계 여윳돈 =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 흑자액(전국·1인이상·실질)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8000원(1.7%) 줄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이자비용·세금 등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이다.

더 큰 문제는 가계 흑자액이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 1인 가구를 포함해 가계동향이 공표된 뒤로 역대 최장기간 감소다.

가장 큰 이유는 고물가 장기화로 실질소득이 줄고 있어서다. 최근 2년 중 4개 분기 동안 가구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줄었다. 감소 폭도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3.9%에 달했다. 나머지 4개 분기도 실질소득은 늘었지만 증가 폭은 모두 0%대에 그쳤다.

실질소득 증가율은 매 분기 소비지출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고 이는 처분가능소득(소득-비소비지출)의 감소세로 이어졌다. 최근 2년간 처분가능소득은 5개 분기에서 각 1.2~5.9% 감소했다. 나머지 3개 분기에서는 보합 혹은 0%대 증가세를 보였다.

고금리로 늘어난 이자비용 역시 흑자액이 줄어든 원인 중 하나다. 이자비용은 2022년 3분기 이후 6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2022년 2분기 8만6000원에서 올해 1분기 12만1000원까지 치솟았다.

◆내수부진 악순환 못벗어나 = 실질소득 부진과 이자비용 증가 등은 처분가능소득과 흑자액 감소로 이어졌다. 다만 처분가능소득보다 흑자액 감소 폭이 더 큰 탓에 처분가능소득 대비 흑자액을 뜻하는 흑자율은 2분기 29.0%를 기록, 8분기째 하락했다.

쪼그라든 가계 여윳돈은 결국 가계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재화소비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2.1% 줄었다.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의 한 축에는 빠듯해진 가계 살림살이 있는 셈이다.

실제 올해 들어 내수 흐름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비내구재·준내구재·내구재 등 전반적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건설투자 역시 3개월 연속 감소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9% 감소했다. 소매판매는 내수와 직결된다. 올해 들어 소매판매는 △ 1월 1.0% △2월 -3.2% △3월 1.1% △4월 -0.6% △5월 -0.2% △6월 1.0% 등으로 매우 부진하다. 건설투자도 1.7% 감소했다. △5월 -4.6% △6월 -0.8% △7월 -1.7% 등으로 3개월 연속 내림세다.

◆그래도 ‘괜찮다’는 정부 = 이런 현실에 비해 정부 인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정부의 경기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지표인 ‘그린북’(최근경제동향)을 통해 지난 5월부터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해왔다.

최근에는 대책도 냈다. 기재부는 “정부는 국내관광 붐업, 소비촉진 3종 세제지원, 건설투자 5조원 보강, 투자활성화 대책 마련 등 내수 회복 가속화를 위한 추석 민생안정대책의 주요 정책들을 속도감있게 추진하는 등 경기 회복세 확산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수 흐름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고 정부가 재정 풀기에 나서기에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 등 보편적 지원에 기재부가 반대하는 이유다. 선별적 지원 등을 통해 꼭 필요한 곳에만 재정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자체를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부자감세와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경제정책토론회에서 “정부가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는커녕 세법개정안을 통해 큰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했는데 최소한 누구에게, 왜, 얼마나 감세하는지는 국민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2차관 출신의 안도걸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남구동구을)도 인터뷰에서 “현 정부 경제정책은 가만히 앉아서 수출 낙수효과만 기다리는 안이한 경기 인식과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세계 경제 둔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정한 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단기적인 임시방편적 정책대응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경제구조 개혁 과제를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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