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추석 분수령’…용산·정부부처 ‘조마조마’
회견선 “원활히 가동”…참모들에겐 “연휴 의료 특별대책 만전”
대통령실 “뺑뺑이 사망증가 주장 근거 없어, 국민 불안 증가”
환자단체 “의사인력 수급추계전문위, 2026년 의대정원 논의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의료체계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 가운데 정부가 추석연휴 응급의료 대책 마련에 총력전을 펴는 모습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환절기로 접어들면서 늘어날 환자를 전공의 등 현장 인력들이 대거 이탈한 지금의 의료체계로 얼마나 소화해내느냐에 따라 의료개혁에 대한 여론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응급의료 문제, 누적된 인력 부족 때문” =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3일 통화에서 “응급의료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해 추석연휴 어려움을 겪는 환자 및 가족들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밝힌 의료현장의 어려움은 환자 입원증가보다 그간 누적된 인력 부족 문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며 “의료개혁을 병행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중앙과 지방이 함께 추석연휴 의료 특별대책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범정부적으로 응급실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오늘부터 복지부, 행안부, 소방청 등 관련 부처가 응급실 현안과 관련해 ‘일일 브리핑’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브리핑에서는 응급실 운영 인력, 환자 현황 등 응급의료 관련 현황과 대응 계획 등을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브리핑하고 응급실 이용 정보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국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 추석 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인 11일부터 25일까지 지자체 단체장을 반장으로 응급의료 상황을 관리하고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비상의료 관리 상황반’을 설치해 운영키로 했다.
또 지자체와 함께 전국 408개 전 응급의료기관 별 일대일 집중 관리 체계를 가동하는 방안도 마련 중이라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지역 응급의료 정상 가동을 위해 응급실 당직 수당, 신규 채용, 인건비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재난관리기금 등 지자체의 가용자원을 활용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도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등 의료인력을 응급실에 긴급배치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박민수 제2차관은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총 15명의 군의관을 이달 4일 배치하고, 9일부터 8차로 파견될 약 235명의 군의관과 공보의를 위험기관 중심으로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며 “9월 11~25일을 추석 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으로 운영해 중증·응급환자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전공의 공백 등 영향으로 응급실과 후속진료 역량은 평시 대비 70~80% 수준으로 감소하여 어려운 여건”이라면서도 “당면한 응급의료의 문제는 의료인력 부족 등 오랜 기간 의료개혁이 지체되면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의료현장 위기설에 대해 “의료현장을 한 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며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 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용산 “의료개혁, 지지율 가장 저조할 때 시작”= 대통령실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야당의 주장을 일축하며 의대증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일 “응급환자 사망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사망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 통계의 산출 자체가 어렵다”며 “명확한 근거 없는 주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응급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고, 불필요한 국민 불안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유불리 셈법을 따져 수년간 방치해 온 의료 개혁을 윤석열 정부는 오로지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2019년 주 129시간에 달하는 살인적 근무를 하다가 급성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며 “만성적인 응급의료 인력 부족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죽음이었고, 지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개혁은 좌초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대증원 방식과 관련해 “의료업계가 통일된 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열려있다”며 “단순히 증원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고집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개혁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약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지지율이 20%대인 가장 저조한 때 시작했다”며 “저항이 예상되지만,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으로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전의교협 “국민 68.9%, 점진 증원지지” = 한편 의사 및 환자단체들은 서로 결이 다른 입장을 내놨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2일 성명에서 “응급실은 전문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발표와 다르게 이미 많은 응급실은 정상적인 진료를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비상진료체계가 잘 돌아가는 상황이냐“고 따져물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정원 확대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같은 날 공개했다.
의대 신입생 정원 확대와 관련해 적절한 방안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68.9%가 ‘점진적인 증원’을 택했다. ‘한번에 일괄 증원’은 22.6%, ‘잘 모름’은 8.4%였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부정 응답이 61.4%로 조사됐다. ‘매우 그렇지 않다’가 44.9%로 가장 많았고 ‘그렇지 않은 편이다’ 16.5% 순이었다.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도(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긍정 응답이 65.0%, 부정 응답이 28.4%로 조사됐다.
반면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개혁특위 개혁안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정부는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를 신속히 구성해 2026년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3일 “각 의료계 및 수요자 단체들이 수급추계전문위 위원 추천을 해주면 50% 이상의 비중으로 구성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며 의개특위에 참여한다면 26년도 정원도 추계논의가 가능하다”며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걸 김규철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