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유통경로 차단 나선다
조지호 경찰청장 “텔레그램 법인 내사 … 성착취물 방조 혐의 적용”
집중단속 시작되며 신고 건수 10배 증가 … ‘암수 범죄’ 드러난 듯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허위 영상물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를 방조한 혐의다.
3일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딥페이크 성 착취물 범죄가 논란이 된 가운데 허위영상물 범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허위영상물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에서 지난해 180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검거 인원은 79명, 78명에서 100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는 허위영상물 범죄 297건이 발생해 146명이 검거됐다. 올해 들어 7개월간 검거된 인원이 작년 한 해 검거 인원을 벌써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구속된 인원은 12명(4.7%)에 불과했다. 올해 허위영상물 범죄 구속률은 2.7%(검거 146명·구속 4명) 수준이다.
◆검거율 50% 이하로 떨어져 = 이 처럼 낮은 구속률과 함께 낮은 검거율도 논란이다. 조은희 의원(국민의힘)은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0% 이하로 떨어진 딥페이크 성범죄 검거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이에 조지호 경찰청장은 “보안 메신저에 대해 직접적으로 방조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가장 큰 문제는 보안 메신저”라며 “보안 메신저를 통해 수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지만, 우회경로를 활용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강조했다.
◆이메일로 공문 발송 = 실제로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내사를 위해 텔레그램측에 이메일로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창업자가 체포된 것처럼 향후 수사를 위해 명분을 쌓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수본은 국제기구나 해외 수사당국과 공조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에서 했듯이 서울경찰청이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프랑스 수사당국이나 각종 국제기구 등과 공조해 이번 기회에 텔레그램 수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텔레그램이 계정정보 등 수사 자료를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 등 다른 국가 수사기관에도 잘 주지 않는다”면서 “저희 나름의 수사기법이 있어 최선을 다해 수사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를 지난달 24일 파리에서 체포했다. 프랑스 검찰은 그를 온라인 성범죄, 마약 유통 등 각종 범죄를 방조 및 공모한 혐의로 예비기소했다.
앞서 프랑스 검찰은 미성년자 성 착취물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응답이 없자 지난 3월 두로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경찰이 텔레그램 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군 딥페이크방’ 수사는 난관 = 이런 가운데 딥페이크 관련 피해 신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딥페이크 음란물 관련 보도가 본격화한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총 88건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특정된 피의자는 현재까지 24명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총 297건이 접수돼 주당 평균 10건이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10배가량 신고가 늘어난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특정된 피해자는 총 51명이다.
우 본부장은 “과거에는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수사 의뢰를 하지 않고 사인 간 합의를 보는 등 개인적으로 처리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며 “최근 딥페이크 음란물이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암수 범죄 피해자들의 신고가 적극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특정이 과거보다 신속하게 이뤄진 데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누가 했다’는 것까지 함께 적시해 수사 의뢰를 한 것이 꽤 많다는 의미”라고 했다.
경찰은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자동 생성하는 텔레그램 프로그램(봇) 8개를 입건 전 조사 중이다. 또 ‘겹지인방’ 등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합성물을 만든 뒤 유포하는 텔레그램 단체방도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딥페이크 봇을 만든 제작자에는 범행 공모 및 방조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여군 딥페이크방’은 존재 사실이 보도된 당일 ‘폭파’돼 사실상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 본부장은 “국방부에 피해 접수가 될 수도 있으므로 협조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국제협약 가입 추진 = 또한 경찰은 2001년 유럽평의회 주도로 디지털 범죄에 대한 신속한 형사사법 공조를 위해 만들어진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절차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조 청장은 이날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절차를 마무리했다면 성범죄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질의에 “동의한다. 저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다만 법체계가 달라 협약 가입을 위해서는 입법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3일 국회에서 열린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삭제 지원의 주체를 국가에서 지자체로 확대하도록 법령 개정을 촉구했다.
오 시장은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딥페이크 영상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 정확한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서울시는 최대한 서둘러 단 한 명의 피해자라도 더 도울 수 있도록 하고 피해자가 무거운 짐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