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금개혁안 ‘더 내서 재정 안정’ 방점
보험료율 9→13% 인상, 소득대체 40→42% … 크레딧 확대, 지급 보장은 ‘긍정’
정부가 4일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올린다. 재정이 악화되면 받을 연금을 바로 줄이는 자동조정장치안도 제시됐다. 연금전문가 노동시민사회 등에서 소득보장 부족이라는 전반적인 평가가 나온다. 다만 크레딧 확대나 지급보장, 연금가입 상한 나이를 올리는 안에는 긍정적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13% 보험료율 인상, 지속가능성에 기여 = 정부의 연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재정이 악화되면 가입자가 받는 돈을 줄이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등 소득보장보다 재정안정에 힘을 쏟는 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득보장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이 40%까지 낮아지다가 다시 42%로 조정하지만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시민평가단 다수가 찬성한 50% 상향 조정안에는 못 미친다.
정부는 우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안을 제시했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3%였다. 이후 1993년 6%로, 1998년에 9%가 된 후 유지됐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절반 가까이 올리는 이유로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로 노인 인구 비중이 커지고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의 고갈 위기 등을 들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작년 3월 발표한 제5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 2041년 수지 적자, 2055년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의 핵심은 모든 세대가 제도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보험료율 인상은 세대별로 인상 속도 차등화로 추진한다.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할 때, 2025년에 50대인 가입자는 매년 1%p, 40대 0.5%p, 30대 0.33%p, 20대는 0.25%p씩 인상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험료율이 인상되면 납입 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젊은 세대일수록 보험료 부담은 커진다며 형평성 문제 해소를 위해 잔여 납입 기간을 기준으로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연령대별 형평성을 개선하는 취지를 지닐 수 있다”면서도 “높은 소득대체율과 낮은 보험료율의 혜택을 입지 않은 중장년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 이력이 일정 기간 미만인 중장년 가입자에 대해서는 보험료 감면 특례가 제공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국회 논의보다 낮은 소득대체율 = 정부는 보장성을 뜻하는 명목 소득대체율을 42%로 안을 냈다. 명목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도입 때는 70%로 높게 설계됐지만 1999년 60%, 2008년 50%로 낮아진 뒤 매년 0.5%p씩 깎여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다. 올해는 42%, 내년에는 41.5%다. 정부가 제시한 42%는 올해 명목 소득대체율과 비교하면 ‘현행 유지’인 셈이다.
정부는 재정 안정과 함께 소득보장도 중요하다는 국민 의견을 고려해 42%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를 주장해온 연금전문가들이나 노동시민단체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300여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의 정용건 집행위원장은 “보장성 면에서 국회 공론화 과정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현재 실질 소득대체율은 32.9% 수준인데 보장성은 눈곱만큼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보험료율과 명목 소득대체율은 21대 국회에서 시민 다수가 선택한 안에 비해 소득대체율 부분에서 격차가 크다. 시민참여단의 다수는 ‘명목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 인상’안을 택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는 ‘명목 소득대체율 44% 안팎·보험료율 13%’로 이견을 좁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은 이보다 낮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42%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모든 세대의 국민연금을 위해선 소득대체율 50% 상향과 보험료율의 단계적 조정, 국가 책무 강화라는 정통한 방식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는 적절하지만, 노후소득보장 대책은 여전히 빈약하다”고 밝혔다.
◆자동조정장치 도입 국가는 보험료 매우 높거나 국고투입 = 정부는 연금지급액을 기대 여명이나 가입자 수 증감에 연동해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의 도입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연금전문가들은 사실상 연금을 깎는 제도라고 본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른 국고 투입없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재정이 불안하며 연금을 바로 삭감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동조정정치를 도입하게 되면 국민연금 급여가 크게 줄게 될 것이고 은퇴자들의 소비 축소와 그로 인한 내수 위축도 낳고 많은 노인들의 소득이 빈곤선 이하로 하락하는 등 노인빈곤의 문제는 지금세대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으나 이들 국가는 핀란드(24.9%) 스웨덴(18.5%), 독일(18.6%) 등 보험료가 상당 정도로 높은 수준이거나 공적연금에 대한 국고지원이 상당 정도 규모에 도달한 경우로 우리나라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수명이나 가입자 수와 연계해 연급 수급을 자동으로 조정한다는 정부안에 대해 “청년 세대는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을 연금급여마저 자동 삭감당한다. 청년의 국민연금을 용돈연금보다 낮은 ‘푼돈연금’으로 추락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금가입 상한연령 상향, 다른 노동정책 연동해야 = 정부는 연금가입상한연령 상향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연금가입연령과 수급개시연령의 불일치로 소득절벽이 크기에 연금가입상한연령 상향은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고령노동자 저임금노동시장이 광범위한 상황에서 단순히 연금가입상한연령만 상향하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공적연금행동에 따르면 정년연장 등 고령자 고용과 관련된 종합적인 노동시장정책이 없이 연금가입상한연령만 조정하는 것은 고령자 연금가입의 격차를 불러오는 등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임금 고령자가 국민연금가입자로 유입될 경우 전체적으로 연금급여수준을 하락시킬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공적연금행동은 “고령노동자들은 자영업자가 많아 보험료 납부가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또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고령노동자도 많아 이들을 고용한 영세사업주의 보험료 납부 부담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연금가입상한연령 상향은 고령노동자 저임금 노동시장의 개혁과 함께 중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책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젊은 층의 소득 공백을 보상하기 위해 크레딧 지원을 강화한다. 현행 제도는 출산 또는 군 복무 시 보험요를 내지 않아도 해당 기간 중 일부를 연금액 산정시 가입기간으로 인정해 준다. 복지부는 현행 둘째아에서 첫째아부터 가입 기간으로 인정하고 군 복무 크레딧도 기존 6개월 인정기간을 군 복무기간을 고려해 확대할 계획이다.
국가의 연금 지급 근거를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 개정도 추진한다. 현행도 연금지급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래에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 않냐는 불안감이 있다. 크레딧 확대와 지급보장 부문은 별 다른 이견이 없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