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금기’가 사라진 이후
요즘 상임위를 보면 영락없이 ‘동물국회’다. 과거엔 몸으로 ‘동물’ 같은 행동을 했다면 이제는 목소리로 으르렁댄다. 상스러운 욕만 입에 담지 않을 뿐 상대방에 대한 모욕과 비난의 말이 흥건하다. 거침없고 자유롭다.
금기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상대방은 정치 파트너가 아닌 ‘있어서는 안될 존재’다. 회의장에서는 삿대질과 고성이 일상화됐다. 초선이든 5선이든 선수도 없고 나이도 없다. 제 편 두둔과 기싸움만 난무할 뿐이다. 회의장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검사 판사 장관(급)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탄핵’을 입에 올렸다. 윤석열정부 검찰은 야당 대표에 이어 전임 대통령까지 탈탈 털 모양새다.
관계 회복의 탄력성도 같이 없어졌다. 상임위에서 한바탕 핏대를 올리고도 상임위 밖에서는 악수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또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들른 사우나장에서 속내를 드러내던 건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선거가 끝나면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고소고발들을 취하하던 관행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서로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인간적으로 혐오하는 모습이다. 국회의원들이 상대방 의원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듣기 거북할 정도다.
‘금기’가 사라진 빈자리엔 ‘법’이 파고들었다. 법에서 명시적으로 허용한 것뿐만 아니라 법에서 금지하지 않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됐고 마치 몰랐던 권한을 찾아낸 듯 실제로 실행됐다. 절대 과반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쏟아냈고 법안 단독처리에도 속도전을 펼쳤다. 위법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주당 전략에 맞는 법안과 청원에 대해 선택적으로 청문회 공청회 등을 실행했다. 역시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안건조정위원회 등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는 ‘규정에 따라’ 모두 무력화됐다.
대통령과 여당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섰고 민주당이 반대하는 인사들에 대해서도 ‘법에서 허용하는 대로’ 임명을 강행했다. 정부의 독점 권한인 예산편성권을 활용해 대규모 세수부족에도 부자감세를 단행했다.
‘법’이 만들어준 권한을 맘껏 사용하는 자유들이다. 결과는 자유와 자유의 충돌로 이어졌다. 충돌의 강도는 갈수록 커지고 이견의 간격은 더 벌어지는 분위기다.
문제는 조율할 방법, 주체를 딱히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율을 시도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국회는 이미 조율능력을 상실했고 행정부도 일방의 편일 뿐이다. 사법부에 맡기면 오히려 갈등만 키운다는 것은 이미 경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를 만끽하는 세상’의 미래는 어떤 곳일까. 안 가본 길이라 두렵다.
정치팀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