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중선관위 쌈짓돈 ‘예비금’…특수활동비 등 활용

2024-09-09 13:00:20 게재

대법원·헌재는 배정돼도 안 써 … 대부분 ‘국회용’

중앙선관위, 획정위 운영비·재해보상비에 지출

지출명목 ‘독립성 보장’ 모호 … 감시 사각지대

예비비와 별도로 책정되는 예비금이 국회, 중앙선관위 등 일부 헌법 독립기관의 쌈짓돈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금은 독립기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마련된 것인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별도로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독립성 보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사실상 정부와 국회의 통제 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나 중앙선관위 예산에 포함시켜 정부의 예산편성과 국회의 결산 심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발언하는 정동영 과방위 예결소위원장 6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정동영 소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9일 정부가 제출한 2023회계연도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예비금으로 편성된 규모는 18억6500만원이었고 이중에서 13억6578만원이 지출 결정액으로 확정됐다. 실제 집행한 금액은 13억885만원이었다. 정부의 집행지침을 보면 예비금은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독립기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개별 법률에 근거해 예산에 계상된 경비’다. ‘독립기관의 독립성 보장’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다. 다만 “각 중앙관서의 장은 예비금의 사용이 필요한 때에는 그 이유 및 금액과 추산의 기초를 명백히 한 예비금사용계획명세서를 작성해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면서 “기획재정부장관은 예비금 사용신청이 있을 경우 예비금 사용계획의 적정성을 점검하여 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독립기관들은 어떤 ‘독립성 보장’ 활동에 이 예산을 썼을까.

국회는 13억원을 편성받아 이 가운데 12억4453만원을 지출했다. 지출 내역을 보면 특수활동비로 6억5000만원이 들어갔고 2억6884만원이 직무수행경비로, 3억2469만원이 업무추진비로 지출됐다. ‘예비금 신청시 원칙적으로 특정업무경비 등 단일 비목이 당해 예비금 배정신청 총액의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국회는 절반 이상을 특수활동비라는 단일 비목으로 지출했다.

국회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운영위 지출 동의를 받아 6억5000만원씩 배정받았다. 상반기엔 배정받은 6억5000만원을 모두 썼고 하반기에 지출결정된 5억9453만원 중 5547만원을 쓰지 못하고 불용했다.

중앙선관위엔 2억6000만원 편성됐지만 6578만원 규모만 지출결정됐고 이중 6432만원이 지출됐다. 중앙선관위는 일반예비비로 돌려 22대 국회의원선거구 획정위 운영경비로 4538만원을 배정받아 146만원을 뺀 나머지를 썼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재해보상비로 배정받은 2040만원 역시 대부분 지출했다. 대법원과 헌재엔 2억8000만원과 2500만원이 각각 배정됐지만 모두 불용됐다.

국회 중심의 예비금 지출은 과거부터 오랫동안 이어온 관례다. 국회는 매년 13억원 내외를 받아 절반 가까운 규모를 특수활동비로 전환해 사용했고 나머지는 업무추진비와 직무수행경비 등으로 나눠 사용했다. 중앙선관위도 매년 연구용역, 유형자산 구입, 선거 소요 경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지출했다. 지난 2022회계연도 결산에서도 예비금으로 18억4000만원이 편성됐고 국회가 배정된 13억원 중 11억9100만원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예비금을 지출한 국회는 절반 이상인 6억5000만원을 특수활동비로 지출하고 3억2500만원은 업무추진비, 2억3200만원은 직무수행경비로 썼다.

중앙선관위는 배정된 2억3500만원을 모두 사용했다. 대법원과 헌재는 각각 2억 8000만원, 2500만원을 쓸 수 있었지만 모두 불용처리했다.

민주당 모 관계자는 “예비금은 독립기관의 쌈짓돈이라 정부나 국회의 심사에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연례적으로 발생되어 예측이 가능한 일상적, 경상적 경비로의 집행을 지양한다”고 하고 있지만 이를 준수하는지는 제대로 점검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지난 2013년 예비금 감사를 통해 “앞으로 예비금을 연례적으로 발생하여 예측이 가능한 일상적·경상적 경비로 집행하는 일이 없도록 예비금 집행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했다

내년 예산에 편성된 예비금은 올해 18억원보다 30.3%인 5억4600만원이 줄어든 12억5000만원이 배정됐다. 예비금 전체 규모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헌재와 대법원이 오랫동안 불용해왔던 점을 고려해 실제 사용했던 규모만 편성했다면 실 사용액은 크게 줄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중앙선관위의 예비금 지출 규모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편 행정법원은 “20대 국회가 사용한 2016년 6~12월까지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예비금, 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 세부집행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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