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기피 갈등 심한데…정부 뒷짐
노인요양시설 '뺑뺑이' 경고 무시
서울시 “법 개정해 시설 확보해야”
공공시설 기피 갈등이 사회문제로 부상했지만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 코앞까지 다가온 초고령사회를 대비하지 않으면 응급실 같은 노인요양시설 뺑뺑이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11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재건축 단지들의 공공시설 기피 갈등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 그에 따른 필수 기반시설 확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문제를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지속적인 건의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법 개정 상황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시는 국토부에 2000세대 이상 주택개발 시 노인의료복지시설(노인요양원)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건의했다.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주택건설기준을 바꿔서 △주민공동시설에 어린이집처럼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하고 △2000세대 이상일 경우 단지 내에 요양시설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급증하는 노인 인구에 비해 이들을 돌볼 요양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말 기준 서울의 노인 장기요양 인정자 1·2등급 대상자는 2만5574명이지만 확보된 요양시설 정원은 1만6999명에 불과하다. 수요 대비 공급 충족률이 66.5%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수요 공급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은 노인 인구가 185만명을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한 인구 전문가는 “노인 인구 증가는 정해진 미래”라며 “기대수명 증가로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자 수도 늘어나고 요양시설 이용자 수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간병비다. 요양병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상당수 가정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간병비 부담 때문에 요양시설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요양시설 수요는 갈수록 커진다.
하지만 정부는 노인시설 의무화 조항을 넣자는 지자체 건의에 “서울만의 특수한 상황인 만큼 당장 제도 개선을 추진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복지부도 마찬가지다. 시는 재건축 단지들의 기부채납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노인시설에 대한 거주자 우선 입소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론 재건축 단지에서 노인시설을 짓더라도 단지 주민이 우선 입주할 수 없다. 정부는 이 마저도 형평성 등을 문제 삼으며 법 개정을 미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사례를 예로 든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신규 단지가 만들어질 때 거주자 자녀의 어린이집 우선 입소를 명문화하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라 어린이는 줄어들고 노인 인구는 늘고 있어 노인 시설이 필수가 되어야 하지만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인장기요양법 35조 개정을 통해 단지 내 노인요양시설 설치 시 거주자 우선 입소를 허용하자고 건의 중”이라며 “형평성 문제는 우선 입주 비율을 제한적으로 적용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 나서면 의원 입법 추진 = 서울시는 법 개정을 위한 정부 건의를 진행하는 한편 자체적인 공공시설 확보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필수시설을 단지별이 아닌 지역별로 배치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다. 여의도 목동 압구정 등 대규모 개발이 예정된 곳들을 지역 단위로 묶어 필수시설 배치를 계획할 경우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선호시설 도입 시 의견수렴을 통해 주민이 원하는 시설을 함께 넣는 방법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부가 법개정을 계속 미룰 경우 국회를 통한 의원 입법도 추진할 방침이다.
요양시설 관계자는 “돌봄종사자 수가(인건비) 인상, 노인시설 의무화를 위한 법개정 등 정부가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면서 “지금처럼 안이하게 초고령사회 문제를 대할 경우 부족한 노인시설 때문에 데이케어센터 ‘뺑뺑이’를 도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