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회’ 고 최동씨, 35년 만에 무죄
노태우정부 시절 국보법 위반 유죄 확정
‘인노회 이적성 없다’ 판결로 재심 무죄
동생 최숙희씨 “김순호는 이 사실을 알까”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가 이적단체라는 판결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인노회 회원이었던 고 최동씨가 35년 만에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노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대법원 재심 확정 판결에 이은 최씨의 무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조형우 부장판사)는 지난 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989년 유죄를 선고받은 고 최동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활동했던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며, 최동이 이적표현물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이 판결문에 적혔다. 다만 피고인의 이름 앞에 ‘망’자가 적혔다. 최동씨가 경찰 고문 후유증을 겪다 1990년 8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4년 만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최씨가 이적단체에 가입했다거나, 그가 소지한 책자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최동씨는 성균관대 4학년이던 1983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학내 시위를 주도해 실형을 선고받고, 복학 대신 노동운동을 택했다.
최씨는 1988년 5월 인노회에 가입했다가 이적단체 활동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자취방에 보관하고 있던 책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2’ 역시 북한에 동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지한 이적표현물로 취급됐다.
1심은 최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항소심이 열리지 않은 채 그대로 확정됐다. 실어증과 조현병 증세 등 고문 후유증을 보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던 최씨는 1990년 8월 분신해 생을 마감했다.
이후 27년 뒤인 2017년 1월 18일 서울고법에서 선고된 또 다른 인노회 회원의 재심 판결(인노회 이적성 판례 변경)이 최씨에게 명예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줬다. 당시 재판부가 “인노회 활동은 노동법 개정 등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및 5공 비리 척결 등을 위한 것으로, 반국가단체와 연계한 정황은 찾아볼 수 없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고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도 2020년 4월 29일 인노회가 이적성이 없다고 재심 사건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최씨 재심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도 “인노회 활동이 그 자체로 국가의 존립·안전에 해악을 끼칠 만한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지닌 책은 위법한 체포과정에서 강제 압수돼 증거능력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무죄 판결 이후 최씨의 여동생 최숙희씨는 11일 “재심 판결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구나’, 오빠가 우리와 함께한 시간은 30년인데, 오빠가 돌아가시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흐른 35년 만에 무죄라니…. 오빠가 이 사실을 저세상에서 알까?”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오빠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70일 만에 동행의 길을 떠난 아버님은 아실까? 34년간 가슴에 한을 묻고 살아온 어머님, ‘우리 동이 살려내라’라고 크게 외치셨던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너무 노쇠하신 어머님께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할까? 기막히고 복잡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며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이 김순호는 이 사실을 알까? 어떻게 해서라도 알려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순호 전 경찰국장은 최씨의 성균관대 1년 후배로 학내 동아리 ‘심산연구회’는 물론 인노회 활동을 같이 하던 사이였다. 최씨가 1989년 4월 체포될 당시 인노회 6분회 회원이었으며, 김 전 국장은 인노회 제3지구 부천위원장이었다고 한다. 최씨가 다른 분회장 등 인노회 회원들과 체포될 때 김 전 국장은 ‘인노회를 그만두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잠적했다고 한다.
4개월 후인 1989년 8월 김 전 국장은 ‘대공특채’로 치안본부 대공3과 소속 경찰(경장)이 됐다.
김 전 국장은 경찰국장에 이어 경찰대학장을 지내고 지난해 10월 정년 퇴임했다. 2022년 8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인노회는 주사파 이적단체가 맞다”고 주장해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인노회와 함께 했던 옛 동료들을 부정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