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고영한·박병대 항소심…‘무죄’법정공방
검찰 “‘재판개입’ 행정권 남용 … 원심 법리오해”
양승태측 “검찰의 주장, 원심 판단 뒤집기에 부족”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2심 재판이 시작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4-1부(박혜선 부장판사)는 1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26일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었다.
검찰은 3명의 전 대법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사법부 독립의 외관을 갖췄으나 실제 재판에 개입해 사법권을 남용했다”며 “이 사건은 국민의 기본권과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기본 권리를 보장할 책무가 있는 사법 행정권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과 고·박 전 대법관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원심은 법관이 재판에 대해 사법행정권이 인정되지 않아 재판에 개입해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사법행정권 남용임에도 원심은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항소 배경을 밝혔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측은 “검찰의 주장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기에 부족하다”며 “1심 재판부가 직권남용, 공모 등에 대해 적절하게 법리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맞섰다.
이어 “1심에서 증거 능력 부분이나 공소장 일본주의에 대해 검사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며 “이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바로 잡아달라”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측도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기본적인 목적이 공소사실 모두에 직권남용으로 구성돼 있다”며 “법원에 부여된 헌법적인 사명을 발휘했을 뿐인데 검찰이 기소한 직권남용 혐의는 비현실적이고 자의적인 프레임”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1심이 부당하다며 인신공격적인 표현도 하고 있다”며 “검찰에 공식적 사과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법관측은 “검찰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낯이 뜨겁고 울분을 다스리기 어렵다”며 “‘원심이 부화뇌동해 피고인을 위한 재판을 진행했다’, ‘제 식구 감싸기’ ‘온정주의·조직 이기주의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다’와 같은 내용의 항소이유서는 외국 같으면 법정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의 2인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과 병합해 심리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제기했다.
이에 고 전 대법관측은 “1심에서도 이미 병합신청이 있었으나 당시 재판부는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절차 진행과 실체적 진실 발견 측면에서 더 좋다고 판단했다”라며 반대했다.
재판부는 두 사건 병합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0월 23일에 열릴 예정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동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고·박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이를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 구속기소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각종 재판에 부당 개입한 혐의와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검찰 기소 후 4년 11개월 만인 지난 1월 26일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가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관계자들이 일부 재판 개입 등을 시도하긴 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가담했다고 볼 수 없으며, 권한남용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기소된 고∙박 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