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시대를 슬기롭게 사는 법
기술에만 의존한 삶 저항하면서도 개별 테크놀로지 발전 받아들이는 게 중요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추억에 잠긴다. 선선한 초가을 바람에 몸이 감응하는 이유는 꼭 이맘때쯤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 추(秋)를 쓰는 추석과 따를 추(追)를 쓰는 추억은 의미상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음운적 차원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현상을 막을 도리는 없다.
9월로 달력이 넘어간 어느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필자는 이럴 때마다 이란에서 근무하던 10여 년 전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는 유튜브가 아닌 팟캐스트의 시대였다. 11년 전 다운받은 3시간짜리 팟캐스트 음원을 찾아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프로그램은 2013년 7월 시작해 3년간 계속된 평론가 신형철의 ‘문학 이야기’다. 특히 가수이자 시인이자 농부인 ‘루시드 폴’의 에피소드는 지금껏 인생에서 수십 번도 넘게 밤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문학 이야기’는 딱 두개였다. 하나는 ‘루시드 폴’ 편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의 첫회였다. 팟캐스트의 문을 열며 진행자는 책을 하나 소개한다.
책 ‘모든 것은 빛난다’가 보여준 통찰
책은 UC버클리에서 오랜 시간 강의하며 현대기술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휴버트 드레이퍼스가 그의 제자이자 하버드대 학장인 숀 도런스 켈리와 함께 쓴 ‘모든 것은 빛난다(All Things Shining)’다. ‘세속의 시대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서양고전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10년 넘게 알지 못했다. 2011년 1월 출간된 책은 2013년 처음 한국에 소개됐다. 지난해 9월 우리말 개정판도 나왔다. 그사이 휴버트 드레이퍼스는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읽기는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이 방대한 사상을 통시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완독을 포기하고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부터 정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마존 킨들에서 영문판을 구입해 우리말 판본과 비교하면서 읽어나갔다.
필자의 눈길을 끈 내용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저자들의 시각이다.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세속의 시대에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Lives Worth Living in a Secular Age)’을 논한다. 우선 두 철학자는 테크놀로지를 현대세계가 작동하는 기본원리, 즉 공리(公理, axiom)로 전제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대 테크놀로지의 주된 목적은 어느 분야든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테크놀로지란 힘든 일들을 쉽게 만들어서 우리의 삶을 향상하는 것(Technology improves our lives by making hard things easier)”이다.
두 철학자는 테크놀로지의 대표 사례로 위성항법장치(GPS)를 분석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만 있으면 길 잃을 일이 없다는 점에서 GPS는 대단히 편리하다. 저자들의 표현처럼 이제 “낯선 곳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GPS가 가르쳐주는 대로 좌회전하거나 우회전하는 것”이다.
테크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정의조차 구식처럼 들린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에게 운전이란 커다란 스크린에 목적지를 말한 다음 간헐적으로 핸들에 손만 올려놓고 딴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근무 시절,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를 잇는 101번 도로에서 수없이 마주친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구독자들처럼 말이다.
기술은 의미의 가능성도 축소시켜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동시에 테크놀로지의 향상은 ‘의미의 가능성(possibility of meaning)’을 축소한다고 말한다. GPS에 의존하는 운행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지에 대한 감각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GPS가 대신 항해를 하는 동안 주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랜드마크에 대한 인지, 도로표지판에 대한 해석, 동서남북에 대한 감수성도 함께 잃는다.
GPS에 의존한 운행은 운전 기술을 숙련하면서 축적할 수 있는 차이를 사소한 것으로 덮어버린다. 이로써 운전자에게, 아니 우리에게 세계는 점점 단조로워진다. 세계가 단조로워질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도 단조로워진다. 우리가 단조로운 존재가 될수록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40년 조금 넘는 필자 인생에서 ‘의미의 가능성’을 급작스레 끌어올려야 했던 곳은 아무래도 이란 테헤란과 미국 실리콘밸리다. 테헤란에서 5년, 실리콘밸리에서 3년을 거주했기에 이란과 미국은 한국을 빼고 물리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근무하는 것이므로 재빨리 현지에 녹아들 필요가 있었다.
이란에서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실험했다. 집에서 테헤란 북부 ‘타지리시(Tajrish)’ 시장에 갈 때 처음에는 3000원짜리 콜택시 ‘어전스’를 이용했다. 이란 사람들이 현지 물가로 꽤 비싼 돈을 내고 ‘어전스’만 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테헤란은 합승택시 ‘모스타김’이 합법이었다. 시민들은 승객이 타고 있는 택시를 불러세우고 요금을 나눠서 냈다. ‘모스타김’을 타자 금액이 1000원 이하로 줄었다.
나중에는 이마저도 비싸게 느껴졌다. 더 알고 보니 집 근처에서 시장까지 가는 승합차량 ‘하티’가 주기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마을버스와 같은 개념이다. ‘하티’를 이용하니 요금이 300원으로 줄었다. 줄어든 요금만큼이나 우연한 인연이 늘었다. 옆자리 승객이었던 ‘알리’는 전화번호를 주며 필자를 집으로 초대해 음식과 차를 내줬다.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구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애썼다. 반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졌다. 운전할 때 웬만하면 구글 지도를 끄고 목적지를 찾아갔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뒤따랐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일출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2023년 1월 1일 남은 휘발유가 간당간당했다. 가족을 먼저 내려주고 길을 잘 알던 샌타클래라 콜맨 애비뉴의 코스트코로 차를 몰았다. 안타깝게도 새해 첫날은 대형마트 주유소가 휴무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가까운 주유소 ‘76’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스르륵 엔진이 죽었다. 비상등을 켜놓고 부리나케 주유소까지 뛰었다. 1갤런짜리 통을 사서 기름을 담고 낑낑대며 차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를 통해 휘발유가 부족할 때는 ‘스톱앤고(ISG)’ 기능부터 해제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스스로 보는 법을 찾는 게 중요
‘모든 것은 빛난다’의 저자들은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의미의 가능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우선 테크놀로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라고 못박는다. 그보다는 “전적으로 기술에 의존한 삶의 방식에 저항하는 창작적 실천을 바탕으로 개별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온당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가치 있는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갖고, 중요한 차이를 드러내는 기량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급속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나날이 압도되고 있는 단독자로서 무엇이 여전히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행히 미국 현대철학을 대표하는 두 대가가 힌트를 준다. “답은 ‘보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The answer is one must learn to see)”고. 무엇이 여전히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실험과 관찰(experimentation and observation)이 필요하며, 실험과 관찰에는 위험과 보상(risks and rewards)이 함께 따른다고 덧붙인다.
올해 초 한국에 돌아오면서 내린 중요한 결정은 자동차를 사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의존하며 살았다. 갑작스레 서울에서 맞이한 차 없는 삶은 해방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버스 자전거 도보를 실험하다가 아침에는 통근버스를 타고 있다. 퇴근할 때는 시내버스를 탔지만 날이 선선해지면서 슬슬 집까지 걸어서 가볼 생각이다. 이번 추석은 기차표 예매에 성공했다. 고속철을 타고 고향에 간다. 창밖을 응시하며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