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세계가 머리 맞댈 인권 문제”
1세대 이산가족 80% 사망
남북관계 경색, 만남길 막혀
민간 주도로 고향 방문 주력
“6.25전쟁 후 71년이 지난 2024년 1세대 이산가족 생존자는 20%이고 생존자 가운데 70% 이상이 80~90대입니다. 198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는 총 13만3685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9만3277명은 이미 세상을 등졌습니다. 생존자는 약 30%에 불과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이산가족의 현주소다.
◆남북 정부 모두가 인권침해 = 한반도 이산가족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대규모 ‘난민’ 사태로 규정된다.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남한에 내려온 이산가족 수는 약 537만명에 이른다. 1945년부터 6.25가 발발한 1950년까지 350만명 이상이 남한에 내려왔고, 전쟁 이후 1953년 정전협정 전까지 추가로 약 150여만명이 남하했다. 남한에만 이산가족이 있는게 아니다. 이들을 떠나보낸 북한의 가족 또한 400만명에 육박한다. 6.25 전후에 발생한 한반도 이산가족 수를 1000만명이라고 부르는 근거다.
그간 이산가족 지원정책의 방점은 ‘상봉’에 찍혀 있었다. 매해 상봉 신청이 진행됐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실제 상봉이 이뤄진 일이 있었다. 금강산 면회소 등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졌고 남북 정부 이해관계에 따라 대규모 상봉도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남북관계가 전에 없이 경색됨에 따라 북한 방문은 물론 정부 차원의 상봉 행사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더욱 큰 문제는 1세대 이산가족 대부분이 초고령인데다 생존자 수도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산가족 상봉이 부모와 형제를 찾는데 집중됐는데 이들 역시 고령으로 세상을 등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산가족 관련 전문가와 당사자들은지원 정책의 중심을 ‘상봉’이 아닌 ‘고향 방문’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가장 시급한 인도적 지원은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일기금 사용 문제를 지적한다. 이산가족 문제는 통일의 출발이며 분단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야말로 통일기금 조성 용도와 부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전문가는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 이후에 사용하려 기금을 쌓아둘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산가족 문제가 부상하면 잊혀졌던 남북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산하 NGO단체인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현재 UN 경제사회이사회에 참여해 세계 각국에 남한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한 해결책으로 고향 방문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남북한과 동시에 국교를 맺은 나라들과는 더 적극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을 가로막는 남북한 당국 모두가 인권침해를 방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념, 정치적 잣대를 걷어내고 이산가족 1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이산가족 문제 동참 = 서울시는 최근 잊혀진 이산가족 문제를 시민들에게 환기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했다. 지난 10일부터 다음달 27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제2회 이산가족의 날을 기념하는 전시를 진행한다. '희미한 기억, 짙은 그리움‘을 주제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이산가족의 소망과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손편지, 고향그림, 재북 가족에게 받은 선물 등 기증품과 이산가족 인터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북에 있는 이산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 코너도 마련했다. 12일 열린 개막식에는 이산가족들과 함께 서울시 통일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산가족 2~3세대와 북한 이탈주민이 참여하는 작은 음악회, 고령 이산가족 100명을 대상으로 영정 사진촬영도 진행했다.
한편 서울에는 이산가족 1세대 3만8000명 중 9683명(25.4%)이 거주하고 있다. 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중 처음으로 2021년 12월 ‘남북 이산가족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