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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공공갈등, 상생협의체에 답 있다

2024-09-20 13:00:00 게재

한 마을이나 나라를 다스릴 때 심히 고민스러운 경우가 있다. 공공선을 위해 두 마리 토끼 모두 필요한데 부득이 양자택일을 해야 할 때 특히 그렇다. 최근 벌어진 한전과 하남시 간 갈등이 그런 예다.

한전은 하남시 감일동에 있는 동서울변전소를 옥내화하고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송전되는 고압직류(HVDC)를 교류로 바꾸는 변환소를 짓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총사업비 6996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사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 한전과 하남시는 지난해 10월 업무협약식을 갖고 적극 협력해나갈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던 중 하남시가 지난 8월 21일 돌연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전력이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 관련 4건의 허가신청서에 대해 불가 처분했다”고 밝혔다. 중대한 국책사업에 급제동이 걸리게 되자 한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김동철 사장이 나서서 급히 기자간담회를 갖고 “전력망 건설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인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수도권 전력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됐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하남시와 한전의 변환소 갈등 사례

애당초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추진’은 이현재 하남시장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얼마 전(7월 11일) 하남시에서 발표한 ‘공약사업 추진현황’에서도 ‘정상 추진’으로 분류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불과 한달여 만에 완전히 뒤집고 한전과의 협약 파기까지 감행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남시측 관련 문건을 살펴보면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민원이 주된 압력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남시의 이번 결정이 있기 직전인 8월 19일 감일지구 총연합회는 주민 1만2265명이 서명한 ‘동서울전력소 옥내화 및 변환소 증설, 전면 백지화 요청 성명서’를 하남시장에게 전달했는데 그것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듯 국가 또는 지역에 필요한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민원 때문에 혹은 민원을 앞세워 단체장이 인허가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전 집계에 의하면 345kV 송전선로의 경우 표준공기는 9년인데 지역주민 반대 및 지자체 인허가 비협조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약 13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남시장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결국 한전과 하남시 간 지루한 소송전을 통해 결론이 날 공산이 크다. 비슷한 사례의 판례로 볼 때 한전의 승소로 판가름날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그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허비되는 동안 발생하는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국가적 손실이 너무 커진다. 하남시와 인근 주민들이 입는 보이지 않는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주민수용성이 관건, 문제는 어떻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그렇고 산업발전, 지역발전을 위해 재생에너지나 송전망 등 전력설비를 급속히 대거 확충하는 것이 국가적인 과제다. 국가경쟁력도, 지역 균형발전도, 지역소멸 대책도 거기에 달려 있다. 관건은 지역주민의 수용성이다. 아무리 옳고 필요성이 큰 사업도 주민들이 거부하면 과거처럼 강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공통된 고민도 거기에 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가로선 법규정에 따라 인허가를 내줘야 한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신세이기에 민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자치단체장 및 공직자들의 고민은 주민수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게 된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의 경우도 주민수용성이 핵심 관건인데 그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한 사례가 국내에도 더러 존재해 주목된다.

대표적인 예가 신안군의 ‘이익공유제’다. 폐염전 등 유휴부지에 태양광발전을 설치해 그 수익을 인근 주민들과 공유토록 함으로써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주민들의 소득이 증가하자 그간 줄던 인구가 늘기 시작하고 젊은 층이 유입되는 효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송·변전시설과 같은 전력망 사업의 경우 그런 주민참여-이익공유제 방식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그 때문에 독일 영국 등 이 분야 선진국의 경우도 송전망 확충사업에서만은 애로를 겪고 있다.

우리의 경우 관련 제도가 미비되거나 낙후된 게 많아 사회적 수용성에서 어려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남시장의 이번 결정도 그런 열악한 여건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급선무는 전기요금 정상화다. 현재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은 발전원가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기형적 구조다. 실시간 발전원가는 물론 장거리 송전비용 등 유통원가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권역별 차등요금제가 그것이다. 수도권 주민들이 편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대가를 추가로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재원으로 발전소나 송·변전시설 인근 주민들에게 상응한 혜택이 가도록 함으로써 전력시설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전자파의 위해성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가 많은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권위있는 전문기구를 설립-운영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에너지·전력분야 갈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설치해 관련 분쟁을 신속히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체장이 취해야 할 중용, 협의체 통해

이런 국가적 과제가 이뤄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당장 단체장들 앞에 닥치는 고민스러운 현안들이 문제다. 이번 하남시 경우처럼 국가적 과제와 특정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단체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역발전의 동력을 얻고, 부족한 재정도 확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인근 주민들의 거센 민원으로 진퇴양난일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런 경우, 양자택일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아무리 “고뇌에 찬 결단”이라 해도 막상 그 본질은 폭력일 뿐이다. 또다른 반발과 갈등만 낳기 때문이다.

대안은 중용(中庸)에 있다. 중용은 어중간한 타협이 아니다. 공자는 순임금의 예를 들며 ‘집기양단(執其兩端), 용기중어민(用其中於民)’이라 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대립하는 양쪽을 모두 취해 적합한 것을 백성에게 적용하는 것이 중용이란 얘기다.

대립하는 양쪽을 모두 취해 지역주민들에게 적합한 것을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임금이 타임머신을 타고 하남시에 온다면 어찌했을까? 아무리 순임금이라 해도 현대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망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정답을 혼자서 만들어내긴 힘들 것이다. 그럼 대안은?

모두 모여 머리 맞대고 서로에게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며 함께 이룰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른바 상생협의체다. 한전과 하남시, 변전소 인근 지역 주민대표 등이 모여 대화와 협의, 문제해결워크숍 등을 통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협의체에서 함께 논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은 대단히 많다. 우선, 해당 시설(변환소) 설치할 때 전자파가 어느 정도 발생할지. 그로 인한 건강상·재산상 영향은 어떨지 객관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건강상·재산상 피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일부 불가피한 영향에 대한 보상·지원 방안을 논의해 합의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협의과정에서 단체장 혹은 지자체를 대표하는 공무원은 한전과 주민 사이에서 중립적 조정자로서 양측간 협의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공공선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전 및 발전 공기업이 설치-운영하는 전력시설이 지역사회와 공존하며 진정한 상생협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 원장 갈등해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