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시설 없인 재건축 어렵다” 공감대 확산
서울 재건축 단지들 ‘수용’으로 선회
갈등 예방 위해 ‘의무설치’ 법안 추진
노인돌봄시설에 대한 재건축 단지들의 기피현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여의도 대교아파트에 이어 여의도 삼익아파트가 노인재가시설을 포함한 사업계획안을 제출했다.
강남권 아파트들 분위기도 급변하고 있다. 서초진흥아파트는 데이케어센터를 반영한 계획안을 만들었고 서초구과 설치 규모 등을 논의 중이다. 반대의견에서 선회해 주민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자는 곳도 있다. 개포현대2차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자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경 반대파를 중심으로 집회, 시위 등을 일삼던 방식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노인시설 반대의 선두격이었던 여의도 시범아파트도 해당 시설을 포함한 계획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반대하는 주민들이 남아 완전히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시범, 대교를 포함해 17개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는 거의 대부분 조합이 노인시설 설치를 필수 사항으로 여기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며 “먼저 치고 나가던 시범아파트가 노인시설 때문에 주춤한 사이 후발주자였던 대교아파트가 관련 갈등을 해소하고 빠르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시설 설치가 긍정 모드로 바뀌면서 다른 기피시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빗물저장시설인 저류조 설치를 반대해왔던 강남구 대치미도아파트는 최근 저류조를 설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사실상 필수시설인 기피시설을 대놓고 반대하는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서울시의 엄포 때문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지나치게 단지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주민들 사이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성 확보, 서울시가 나서야 = 노인돌봄시설을 반대하던 재건축 단지들이 ‘설치’쪽으로 돌아선 건 서울시가 강력한 입장을 표명한 탓이 크다. 오세훈 시장은 공공시설 기피 갈등이 확산되던 지난달 말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초고령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 노인데이케어센터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며 “각종 재건축 혜택은 모두 누리면서 필수시설은 받지 않겠다는 건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한 원칙을 내세웠다.
오 시장은 이어 “만일 노인돌봄시설을 끝까지 반대한다면 신속통합기획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같은 강경 기조에 자치구에서도 반색하고 있다. 재건축 추진 단지가 많은 한 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노인돌봄시설 등 사회 변화에 따라 필수적인 시설은 제 때 확보해두지 않으면 나중엔 만들기가 정말 어렵다”며 “재건축이 대대적으로 추진되는 지금 꼭 챙겨야 하는 일이며 이에 대해 서울시장이 확고한 태도를 보인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인시설 기피나 공공보행로 차단 등 정비사업 계획의 변경으로 인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추가 입법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토부에 노인시설 의무설치 법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시설 설치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 거주자 우선 입주 조항을 신설하는 법개정을 요청했다. 국회에선 공공보행로 차단 등 당초 기부채납 약속을 위반한 단지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그동안 대형 단지들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치구에 공공시설 갈등을 맡겨놓은 측면이 있다”면서 “결정권을 가진 서울시가 어떤 입장과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공공성 확보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