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 장기표씨, 암 투병 중 별세
전태일 열사 분신 계기
민주화·노동운동 투신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장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이날 정부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고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하면서 1995년에야 졸업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특히 1970년 전태일 열사 사후에는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이후 전 열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90년에는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이어 17·19·21대까지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또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씨와 딸 하원, 보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6일. (02)2072-2091~3.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