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연장 방안
'유병장수' 극복, 지자체 중심 비전 세워야
지역마다 건강수명 영향 주는 요인·정도 차이 커 … 사업 우선순위 수립에 AI활용 ‘경북형 모델’ 주목
우리나라는 최근 노인인구 1000만명을 넘어섰고 내년 초 전체 인구 중 노인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사회는 일본과 더불어 높은 기대수명(2021년 83.6세)을 보인다. 수명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영양과 위생상태가 크게 개선되고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에 따른 피해가 거의 없음과 보건의료자원(인력과 기술)의 발달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70년 이상 이런 조건에 부합하면서 높은 기대수명에 도달했다. 하지만 병든 시기가 13년이나 돼 ‘유병장수시대’가 됐고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개인 삶의 질은 떨어지고 높은 의료비와 돌봄 소득 등 부담 증가는 사회적 난제로 등장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21~2030)을 발표하고 건강수명을 2030년까지 73.3세로 늘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은 결국 주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건강수명에는 개인의 △건강생활실천 △소득수준, 지역의 △의료자원접근성 △지방자치단체의 건강증진 사업, 그리고 중앙정부의 보건의료제도 정비와 예산지원 등이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개인·성·지역별로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한 조건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나라 건강수명을 높이기 위한 전국적 사업 추진이 지역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해서 경상북도 건강수명 사업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가들과 보건사업 실무자들의 대안찾기를 공유한다.
우리나라는 높은 기대수명지표를 보이지만 낮은 건강수명 탓에 일명 ‘유병장수시대’를 보이고 있다.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지자체 중심으로 비젼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국건강형평성학회 등에 따르면 지역마다 건강수명에 영향을 주는 인구분표, 소득·교육 수준, 이용 가능한 의료자원 접근성 등에 따라 지역 건강불평등이 나타난다. 소득수준 상위 20%와 소득수준 하위 20% 간 건강수명은 7.6세 차이난다. 건강수명 상위 지자체 20%군과 하위 20% 사이에 격차가 2.9세 차이난다.
이 때문에 일률적으로 전국 지자체가 동일한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건강수명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 맞춤형’ 건강수명 사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이를 통해 지역간 건강형평성을 높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경상북도가 추진하는 ‘경북 HP2030 건강수명 AI활용 확산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 맞춤형 건강수명사업 추진 필요 = 경상북도는 지난해 시군별 특성을 고려한 사업 지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개발하고 올해는 AI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사업 역량을 높이고 있다. 경북도 건강정책·건강증진 부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도내 건강수명 격차는 5.97세다. 울릉군 73.9세, 영양군 72.7세로 높고 영천시 68.0세 영덕군 68.4세로 낮다. 경북도는 이러한 시군 주민의 건강수명을 높이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경북 건강수명 5년 연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AI기술을 접목했다. 경북도는 도내 주민의 건강수명 높이기를 위해 시군구의 효율적 사업 목표와 계획 수립에 AI기술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경북도가 활용하는 AI기술은 송재욱 한양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건강수명 시뮬레이터’다. 송 교수는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경북 시군 단위의 인구동향조사, 지역사회건강조사, 국민건강보험통계 등 자료를 수집해 비전문가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건강수명 산정모형과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기계학습’의 하나인 인공신경망을 활용해 경북 시군구 단위 건강수명 산정모형을 개발했다. 기계학습은 주어진 데이터를 컴퓨터에 학습시켜 인간의 사고와 유사한 방식으로 스스로 패턴을 찾고 정답을 추론하는 연구를 통칭한다. 송 교수는 개발 과정에서 흡연율 고위험음주율 등 몇 가지 변수를 사용한 기존 방식과 달리 보건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총 43개의 정책변수를 확보했다. 건강수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은 만큼 그 요인끼리 주고받은 상호 영향도 반영했다.
◆경북도 건강수명 계획 수립에 AI 활용 = 이 건강수명 산정 모형에 의해 건강수명 산출도 이뤄진다. 건강수명은 몸이나 정신에 아무 장애없이 건강한 상태로 생존하는 기간을 의미하는데 건강의 정의에 따라 다양한 산출 방법이 있다.
기존에는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건강을 잃은 기간을 제외한 기대여명(HALE) △건강관련 삶의 질과 생존기간을 동시에 고려한 기대여명(QALE) 산출에서 복합질환과 삶의 질 지수 보정을 통해 건강수명을 산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 사용한 HALE는 국가간 비교는 가능하지만 국가별 상이한 질병의 유병·발병률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건강형평성 수준을 파악하는 지역·소득계층별 건강수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대규모 연구작업과 예산이 필요해 최근 지표를 빠르게 도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하는 HALE은 우리나라 자료를 기반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반영하며 지역·소득계층별 건강수명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 QALE는 운동능력 자기관리 일상활동 통증·불편감 불안·우울 5가지 차원의 설문조사를 통해 건강상태를 도출하고 산출방법이 간단해 매년 산출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응답자의 주관에 의존하므로 HALE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건강수명이 도출되고 이에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건강수명 산정 모형이 개발됐다. 지역보건환경 의료이용지표 등 43개의 조정 가능한 정책변수 외 인구구조, 의료기관 수 등 보건소 단위에서 통제가 불가능하나 건강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비정책변수도 함께 사용됐다. 개발된 모형에서는 변수의 중요도와 기여도를 산출할 수 있어 ‘정책 우선순위’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보건 실무자들 “지역 적합한 계획 수립에 도움” = 이러한 건강수명 산정 기능을 탑재한 ‘건강수명 시뮬레이터’는 지역의 건강수명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 보건소 실무자들이 사업 목표와 우선순위를 세우는데 매우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뮬레이터에는 각 지역별로 유의미한 정책변수가 순위와 함께 제공된다. 실무자는 지역과 건강수명(HALE, QALE)를 선택하고 개별 지표 변화에 따른 건강수명 증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들면 청송군 실무자는 경북 평균과 대비해 우수·보통·취약한 지표를 확인한 뒤 건강수명에 영향을 많이 주는 지표를 선정할 수 있다. 청송군민의 건강수명을 높이기 위해 경북 평균 수준인 혈당수치인지율과 취약지표인 체중조절시도율을 평균수준으로 개선할 경우 건강수명이 0.189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표를 경북 최고수준으로 올리면 건강수명이 0.964세 증가한다.
지난 9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진행된 ‘경북HP2030 건강수명 AI활용 확산사업’에 참여한 경북도 건강수명 시군담당자들은 실습과정에서 직접 확인했다.
정민서 영천군보건소 주무관은 “신체활동 영양 비만예방 등 14개 건강증진사업 중 신체사업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데 달성 목표가 낮은 경험이 있었다”며 “이번 실습 과정에서 절주사업을 집중하면 군민의 건강수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 주무관은 “건강증진 통합계획과 세부계획을 세우는데 근거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장소현 안동시보건소 주무관은 “이 시뮬레이터는 사업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사용가치가 높은 것 같다”며 “안동시민의 체중조절시도율이 평균보다 조금 높고 혈당인지율이 낮아 그 사업에 치중해야겠다”고 밝혔다. 장 주무관은 “운동프로그램 중 걷기미션을 달성하면 선물주기 사업이 있는데 그 사업을 집중적으로 하면 건강수명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윤성용 경북도 보건정책과장은 “정부의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추진에 따라 도민의 건강수명 확대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도가 개발한 건강수명 AI 활용 방식을 다른 지자체도 활용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규철 최세호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