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⑥ 통영 추도 숲길
물 부자 섬에 바다보다 아름다운 숲
섬이지만 바다보다 숲이 아름다운 길이 있다. 백섬백길 5코스인 통영의 섬 ‘추도 숲길’이다. 추도 숲길은 6.4㎞ 내내 섬의 원시림 속을 걷는 길이다. 추도 미조 마을을 출발해 큰산(희망봉)을 넘어 샛개, 작은산, 대항마을로 연결되는 옛길이다. 큰 산을 넘어가는 산길은 옛날 미조마을 아이들이 대항마을 추도국민학교를 오가던 등하교 길이기도 하다.
길의 백미는 작은 산의 선제바위 숲이다. 섬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해송 숲이 침묵의 소리로 세파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미조마을은 남해 미조항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마을 초입에는 천연기념물(345호)인 500살 후박나무와 400살 잣밤나무가 마을을 굽어보며 서 있다. 주민들은 오랜 세월 두 나무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살아왔다.
추도는 통영에서도 이름난 물메기의 고장이다. 통영에서는 물메기국을 겨울 해장국의 으뜸으로 친다. 마른메기는 잔치 음식의 대표다.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것 없단 소리를 듣듯 통영 잔칫집에서 마른 메기찜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이다. 추도 어부들은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다. 다른 지역 어부들은 플라스틱 통발을 쓰지만 추도만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나무 통발 어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 어업유산인가.
추도는 물이 좋기로 유명한 섬이다. 산에 나무도 울창하다. 가래나무가 많았다 해서 가래 추(楸)자를 써 추도다. 예전 큰 산 꼭대기에는 산밭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묵정밭이 되었다.
비가 오면 큰산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9부 능선에서 물이 솟구친다. 용천수다. 산에서 솟아나 흐르는 염기가 전혀 없는 추도의 물은 달디 달다. 그래서 추도 물로 위장병을 고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 하나만은 최고의 부자 섬이었다.
섬에 물이 풍족한 것은 축복이다. 물이 많으니 ‘논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추도 사람들은 “보릿고개 시절 쌀밥 먹은 섬사람 추도밖에 없다”고 할만큼 자부심이 크다.
추도는 대항, 미조, 샛개, 물개(어둠골) 등 4개의 마을이 있다. 주민 대부분이 미조, 대항 두 큰마을에 모여 산다. 최근 샛개 물개에도 외지인들의 입주가 늘어나고 있다.
샛개마을은 동남향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샛개는 샛바람(동풍) 부는 바닷가다. 샛개 마을 열두 가구 중 한 가구만 원주민이고 나머지는 모두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입도 10년이 넘은 가구도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주말이나 휴가 때 잠깐씩 살다간다. 우선 ‘세컨 하우스’로 쓰다가 은퇴한 뒤 정착할 계획이다. 인구 감소로 폐촌 위기에 처해 있던 마을을 중장년들이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인구 증가 정책 자금이 쓰이고 있는데도 지방 소멸은 가속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무슨 유행처럼 청년이 돌아오는 섬, 청년이 돌아오는 지방 정책만 쏟아진다. 청년이 만능은 아니다. 섬이든 육지든 돌아오란다고 청년이 돌아오지 않는다. 먹고 살거리가 있어야 청년들도 돌아온다. 일자리가 없는데 무슨 수로 청년이 돌아오겠는가.
대책없는 청년 타령 그만 할 때도 됐다. 백세시대다. 경제력 있다면 오륙십에 돌아와도 사오십년을 더 산다. 중장년들이 섬으로 지역으로 들어가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이 더 현실성 있는 지방 소멸 방지 정책이 아닐까. 추도 샛개 마을에서 드는 생각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